언제나 들뜨는 마음, 어린이 날

by 다다리딩

하루 하루가 소중하겠지만 5월이 되면 물감통 파랑 물감이 맑게 물을 잡아나가는 것처럼 내 마음도 경쾌해진다. 영원히 어린 아이의 마음을 한 조각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는 것. 참 경쾌하고 유쾌한 일이다.


어렸을 때 어린이 날은 의외로 고리타분함과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놀거리도 영화관도 하나 없는 시골에서 부모님은 기어이 이벤트를 해주시곤 했다. 반나절 버스타고 기차타고 나간 서울의 백화점 장난감 더미에서 소중하게 고른 화려한 인형. 이때가 기회임을 제일 잘 아는 아이는 부모님이 사줄 수 있는 한계치를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해낸다. 그렇게 하나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지만 나머지 더 좋고 많은 장난감들이 아쉬워 잠이 오지 않기도 했었다.

에버랜드, 서울랜드, 동물원, 경천랜드, 박물관, 공원에서 시작되는 이벤트......

길게 늘어선 줄과 은근히 따거운 5월의 봄볕, 목마름과 아픈 다리. 또 다시 긴 줄과 달콤한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이 주는 끈적한 황홀함.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소란. 활기찬 공기 사이에 파고드는 극도의 피로함. 하루의 끝에 지친 우리를 업고 안고 가는 차 없는 부모님의 지친 목소리로 이어지는 말다툼. 아침 일찍부터 해질녁까지 이어지는 부모님의 의무감 섞인 이벤트는 그들이 해줄 수 있는, 해주고 싶었던 최고의 노력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신난 참새들처럼 자기의 어린이 날에 대해 조잘거렸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멀리 나갔다 왔는지, 얼마나 좋은 장난감을 받았는지 서로 가늠해가며 작은 경험들을 허풍섞어 나누었다. 그제서야 나는 부모님이 그야말로 애써서 최선의 선물을 우리에게 하사하셨음을 비교해 느끼고 새삼 감격을 했었다. 특별한 경험과 새로운 장난감, 맛있는 음식은 나의 존재를 재정의 해주는 잣대가 되곤 했었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부모님의 어린이날 이벤트는 심드렁해졌다. 고학년이 될수록 허풍섞인 자랑들도 시시해졌다. 그렇게 어른이 될수록 어린이날은 나와 멀어져 그저 출근하지 않는 날이 되어갔다.

공식적으로 어린이날을 졸업한 지 20여년만에 다시 나의 마음은 파랑파랑해졌다. 아이가 생긴 것이다. 잊고 있었던 동요를 더듬더듬 기억해 부르기 시작했고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헷갈리고 호랑이가 나오는 햇님달님, 팥죽할머니 이야기가 쥐죽박죽 되어 들려주다가 결국 인터넷 검색 끝에 아이에게 들려주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최선의 경험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하는 부모가 되었다.

사람 많은 것도 소란스러움과 긴 줄이 싫은 어른이 된 나는 나의 최선을 아이에게 준다. 텅 빈 운동장에서 아침 일찍 그네를 밀어주고 텃밭 상추를 따서 아침 식사를 차리고 파리채를 들고 다니며 아이와 허공에 매서운 스매싱을 날리며 파리를 잡으러 다니는 어린이 날. 객관적으로 시시한 어른이 되었지만 스스로는 대견한 어른이 된 나는 아이와 시간을 나누며 평범한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가 자라서 시시한 어른이 되거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더라도 토닥토닥 두드리며 함께 한 우리의 시간을 정답게 나누는 부모가 되자고 다짐하면서 마루에 앉아 뜨거운 빛을 받는다. 그래, 나는 사소함의 힘을 사랑하는 아이같은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 서른 아홉번째 아름다운 어린이 날을 기념해 시원한 라떼를 들이키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을 것이다. 나의 제제가 또다른 감성으로 나를 어린 소녀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엄마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힘겹게 했던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같이 어지르고 같이 웃고 같이 정리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의 소중한 어린이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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