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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an 24. 2020

명절은 즐거워

시댁에 가는 것은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경상도 양반집안 아주~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여자들은 앉지도 못하고 손님치르며 하루 종일 밥, 반찬 만들고, 차리고 설거지하면...또 점심. 또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설거지하면 또 저녁,.... 저녁상 다 정리하면 술상..

여자들은 부엌에서 밥 먹었고, 제사상에서 여자들은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일은 여자들이 다 했는데!!!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집오기 전까지 어른들 잔심부름하며 그릇나르며 명절은 친구 만날 틈도 없이 일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게다가 고만고만한 친척들끼리 도토리키재기하며 근황 토크를 가장한 대화들. 그 대화에 숨기지 못한 시기, 질투심이 불편했던 시간들.


고만고만한 우리들은 자라, 결혼하면서 매일 일하고 여자, 남자 밥상 따로 차려 먹던 명절에서 탈출(?) 했습니다.

그때 밥상 차릴 때, 누워 "누나 물줘~"라고 시켰던 꼬맹이 남자애들... 이제는 와이프에게 꽉 잡혀 살고 있죠.


ㅋㅋㅋ

저는 탈출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 즐겁습니다.


나는 호랑이같은 시어머니, 얼음장 같은 시댁 식구들에게서 진~짜 고생 많았다.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다. 우린 편하게 순리대로 살자.


시댁의 제사는, 다소 복잡한 사정과 큰집 어른들께서 요양원에 들어가셔서 큰집에서 단독으로 하고 우리 집은 성묘만 가는 것으로, 어머니의 종교에 따라 절에 다녀오는 것으로 정하게 됐답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우리 가족 먹을 음식만 합니다. 시댁 식구들은 소식하는 사람들이라 하루에 두끼? 아..처음 시집와서 어찌나 배고프던지~ 몰래 먹을 꺼 싸가지고 왔었답니다. ㅋㅋ( 이제는 저도 소식하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명절 때 모이면 이런 대화를 합니다.


우리 명절 때 다같이 맛있는 거 뭐 사먹을까?


시댁에 집도 차도 사드리고 온 울 남편이 당연히 외식비도 부담해야겠죠?

그래서 저는 저 나름대로

가성비 갑인 것 찾아 칭찬받고,

생일쿠폰 받은 거 활용해서 절약합니다.


이번 명절에도 직장에서 받은 온누리 상품권, 생일선물로 받은 커피, 케이크 같은 기프트콘 활용 많이 해서 돈 많이 아꼈어요!


우리에게 명절은 평소 집밥 충실히 먹던 우리가 가성비 좋은 맛집 탐방할 기회입니다.


매일 설거지하고, 애들 키우느라 고생인데 명절은 좀 쉬어라. 설거지할 힘은 있다.


당연히 설거지하고, 음식차리는 건 가족 일원으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일흔 아버님이  제일 먼저 설거지설거지하려고 일어서십니다. 어김없이.

 그러면 설거지를 서로 먼저 하려고 앞다투게 되죠. 저는 너무 미안해서요. 자꾸 먼길 오는 것만으로 애썼다며 반찬도 다 해놓으신 어머니가 설거지할 기회를 안주셔서.

시집오고 .... 정말 설거지 한 적이 몇 번 없어요.

 

그래서 이번 명절은 부족하지만 진심을 담아 이렇게 했답니다.


반찬하기 힘든 어머니 위해 나도 반찬 준비해가기.

(손이 많이 안가는 한우, 삼겹살, 야채 가득 준비! )

젓갈류 사서 만들 밑반찬 가지수 줄이기

아가씨에게 어울리는 립스틱과 어머니에게 텀블러 선물 드리기.


우리 자주 못 만나니까 명절마다 추억을 남겨요!
멀리 못 가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 멀리 여행을 못 가세요. 그래서 남편 친구가 속초 호텔 숙박권을 주기적으로 챙겨준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매번 즐거운 추억을 쌓고,

치우고 벌이는 루틴에서 벗어나 호텔에서 알뜰히 꽉찬 하루를 보낸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짐싸는 게 번거러워도 가족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듭니다.



한 공간에서 보내는 3박 4일의 적정거리.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니 행복하다. 너희 둘 시간 충분히 보내고 와라.


 다행히 시댁은 2층 집으로 복층입니다. 그래서 저희만의 공간이 분리가 되어 쉬고 싶으면 올라가 쉬고, 늦잠도 잘 수 있어요. 특히나 영랑호가 바로 앞이라 운동하기도 너무 좋답니다.


새벽엔 나의 시간 ,

아침 오전엔 가족과 카페투어,

아가들 낮잠시간에는 모두 같이 쉬기,

혹은 남편과 나와 바다가 보이는 신상카페에서 커피마시며 공부하기,

저녁엔 명절놀이, 오늘은 윷놀이와 보드게임 준비!

아이들 잠든 야간엔 남편, 남편의 친구들과 데이트.


이렇게 각자의 혼자있을 수 있는 시간을 알차게 가진답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어요. 자꾸 만나고 살다보니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힘듦을 위로해주고 싶고, 가족이니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싶어졌어요.


제 부족한 점도 부러 이야기 안 하시고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셔서,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렇게 시댁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깊은 마음, 남편의 배려심 덕인 것 같아요.

 정말...어머니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나요. 너무 힘든 일도 아픈 일도 많으셨고

그래서 가끔 득도하신 분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잔잔하고 생각이 깊으세요.


처음엔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고 답답하기도 하고 했지만 가까이 보고, 알게 되면 미워할 수가 없게 되더라구요.

  남편도 고부갈등?이 있으면 조용히 제 앞에서 제 편을 들어주었어요.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그런 남편이 고마워 더더 시댁 식구들이 좋았어요.

그래서 아가씨가 공부할 때도 같이 살았고,

명절에 친정가는 것보다 시댁가는 것이 더 좋아졌답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그 가족보다 지금 나를 더 챙기려고 노력하니까 나도 남편의 가족을 아껴야지..라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한번은 남편은 출장가고 저혼자 지독한 감기에 걸려 명절에 혼자 누워 서러워 울고 있는데 아버님이 전화하셔서, 너도 내 딸이다. 혼자 있다고 소홀히 하지말고 따뜻하게 좋은 거 먹으면서 있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마. 내가 너희 삶에 누가 안되게 최선을 다할구마..라고 하셨을 때 정말...마음이 열렸어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먼저 저에게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모자란 저를 토닥여주시니

저는 더 따르게 되는 것 같아요.


마냥 좋겠다구요? ㅋㅋㅋ

우리 남편은 티 타임때 부모님 집 더 좋은 곳으로 옮겨드리겠다고.....

아이고 남편님아~!


우리 돈 더 많이 벌어서

부모님 노후에 도움 드리도록 합시다. ㅋㅋㅋ

무리가 안 되는 선에서 우리의 호흡에 맞춰 효도해요.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편이

먼 바다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저에게

"당신이 우리집에 시집와서 정말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고마워! 명절이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는데 자기가 우리집에 와주어 다들 너무 행복해해."라고 말합니다.

앗~! 감동..ㅠㅠㅠㅠ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속이 답답하면...뛰쳐나와 막 걸으세요.

나도 초창기에...영랑호 엄청 뛰었답니다.


세상에 멋진 시댁 어른도 있고,

멋진 남편도, 며느리도 있습니다.


부족한 깜냥에 모자란 인간들이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그들의 인생을 들을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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