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밀도
아이와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기관에 아이를 맡기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그 시간이 너무도 따뜻하고 행복해서였다. 내가 정성들여 유기농 재료를 골라 사고,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방법으로 조리를 하고, 매번 육수를 이용해 간을 내서 만든 음식으로 포동포동 살이 찌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신적 허기도 사라지는 듯했다.
2년을 잘 나오지도 않는 모유수유를 하고, 좋은 모유를 주고 싶어 외식도 하지 않고 건강식을 하면서 나는 더 없이 건강해졌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주고 싶어 외출이 없다면 무조건 천기저기를 깨끗이 빨아 썼다.
그런 정성어린 노동의 시간이 전혀 아갑지 않았다.
누군가의 똥을 매일 치우고 씻기고 더럽게 음식을 먹어도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와 함께 하는 고된 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보여주는 게 다인 아이와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의 매력을 곱게 봐주고 돌보는 일인 것을.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었다.
직장도, 미혼인 친구들도, 멀리 살고 있는 가족들도 매번 출근하고 늦은 시간 퇴근ㄴ하는 남편과도 단절된 시간이었다.
조지프 캠벨의 일생에 대해 읽으며 그가 우드스턱에서 젊은 시절 고요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고전의 숲에 흠뻑 빠져들어 들어 고독과 침묵의 5년을 보낸 것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깊은인생 중에서
가끔 아이와 분리된 시간을 가지지 못해 답답하고 우울할 때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시간만이 오롯이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틈을 줬다. 아이와 분리된 나는 미친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읽기 버겨운 내용의 두꺼운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되면 덮었다 다시 반복해서 읽고, 읽고. 그 책에서 언급된 책이 있으면 찾아 읽고, 마음에 드는 세계관이 나오면 그 작가의 다른 책도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그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책도 찾아 읽어 나갔다. 1년에 200여권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복직했다.
유능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부장님이
3년간 휴직했던 부원이 들어와서 많이 걱정했는데
전임자보다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아이들도 교원평가에 무척이나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이어서 수업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늘 어딘가 자신없었던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북돋아주었다.
휴직한 기간동안 소소하게 글을 썼다.
브런치에 200여명의 사람들이 구독을 해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힘이 된다는 말들은 내가 괘 괜찮은 작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가끔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에전만큼 크게 좌절하거나 그런 상황에 오게 만든 나 자신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회복탄력성이 붙은 것은 순전히 독서 덕분이다.
책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다.
너만의 탓이 아니라고.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는 할 수 없다는 소리보다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왜 안돼? 라는 생각이 더 많이 자랐다.
모두에게 좋은 교사는 못 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꼭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다스함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고 무너지는 하루가 있어도,
하룻밤 자고나면
나에게 위로가 되는 문구를 찾으면
나는 아이에게 감정적이었던 모습이 잘못이었다고 용서를 구하고 꼭 그를 안아줄 것이다.
나는 책에서 그렇게 배웠다.
조지프 캠벨에게 우드스털에서 5년,
데이비드 소로우에게 월든 호반에서 2년이 있었듯
나에게는 아가와 함께한 3년이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읽었던 책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 읽었던 책들이 그 시간을 함께 해서.
결국은 모든 책들이
나를 제대로 살게하는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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