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Mar 26. 2016

비오는 날의 믹스 커피

내 인생에서 공부의 시작은 24살, 사회 생활 하면서 부터였다.

칭얼거리며 잠과 힘겹게, 끈질기게 싸우던 아들이 결국 항복하고 잠들었다.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얼른 나와 어제 밤 읽다 잠든 책을 꺼내와 읽기 시작했다.



어제 책을 읽다가 두근거려서 잠을 설쳤고 새벽에 몇 번 깨서 어두운 허공을 바라보며 내 인생을 반추해 보았었다. '이 책을 그 때 만났더라면. 그 땐 왜 그렇게 어리고 어리석었을까.'라는 의미없고 어리석은 상상과 후회를 한다. 문득 친구가 보낸 메시지가 떠오른다. '아들과 한자능력검증시험 보고 나왔어.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교대에 가고도 남았을건데.'  

 지나온 것은 언제나 생각보다 쉽게 느껴지고 과거의 나는 언제나 부족했지만 지금의 힘 그대로 돌아간다면 너끈히 잘 해내고도 남을거란 자신감. 물론 우리는 잘 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리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야 성장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지금을 있는 힘껏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밖에 봄비가 내렸고 나는 책을  읽기 전 어제 읽었던 부분의 내용을 회상하면서 재빠르게 믹스 커피를 타 마셨다. 호로록 두 모금에 커피 타임이 끝났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가진 습관. 하기 싫었지만 해야하는 공부를 하기 전 마시기 시작했던 믹스 커피는 지금도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예고 알람같은 역할을 한다. 예전과 달라 졌다면 그 정신적 노동이 무척 달갑다는 것.




"공부는 원래 어려운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파고 들어 성취해야지. 즐기면서 하는 자 못 당한다."

 성적 상담이 있는 날,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매해마다 비슷한 조언을 하셨다. 그 말은 불변진리인듯 보였지만 전혀 와닿지 않았고 공부는 내게 결코 즐기면서 할 수 없는 암담한 벽 같았다. 수학 성적만 바닥을 기는 내가 안타깝다고 수학 선생님은 야자하는 날이면 따로 불러 과외 아닌 과외를 해주셨지만 그 시간이 불편하고 어려웠을 뿐 내 가슴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단지 이 시간이 빨리 지니가 버리기만 바랐다. 어정쩡한 성적표 속 등수처럼 내 위치는 어디서나 어중간했다. 그런 운명이었다는 표식처럼. 졸업한 지 한참인데 내 인생은 성적표 위 그 등수인 것처럼 스스로를 가두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들을 앞에 두고 나는 내 오랜 선생님들이 그랬듯 비슷한 조언들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점이 무척 괴로웠다. 그렇게 공부해 본 적이 없는데 그냥그냥 공부했는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공부는 즐기며 하는거라고 부끄러운 조언을 훌륭하게 산 어른인척 하며 말한다는 것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거짓말쟁이, 형편없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삶. 괴로웠던 나날들. 다른 교사들은 다 잘나고 당당한데 나만 거짓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끔찍했다.

' 이런 나를 보고 누가 뭘 배우겠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없으면 강의를 보거나 교육에 관한 책을 보고 수업 기술을 익혔고 틈 나면 연구 수업 보러 출장을 갔다. 동료샘들의 지혜에 지혜를 보태보기도 했다. 퇴근 후에는 상담과 각국 교육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방학이면 대학원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떠났다.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도움이 되는 수업과 상담을 하고 싶었다. 어설프고 부족해도 아이들에게는 진심으로 조언하고 감싸주고...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래도 부족해 상처받고 좌절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나는 왜 이리도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으로 살아갈까. 


 "교감 샘이 자기 수업 참 잘한다고 칭찬 많이 하더라."

"네? 제가요?"


"샘,  머리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네? 제가요?"


"선생님. 진짜 많이 의지 됐었어요. 덕분에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학교 나오는게... 예전만큼 힘들지 않았어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긍정의 소리에 기대는 것이었다. 그 작은 소리에 기대어  있는 힘껏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자고 다짐했다. 더이상  어정쩡하게 살기 싫었다. 그건 너무 슬펐다.




스무살 즈음 친구가 물었다.

"왜 항상 자기가 못났다고 자학해? 그것도 병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식으로든 크든 작든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생을 좁게 본다면 그 상처에 대한 극복 과정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항상 존경을 받던 아버지지만 나는 가끔 아버지를 존경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것이 불효인 것 같아 가슴이 뜨끔뜨끔 해지지만 상처는 불시에 다시 드러나,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부정적 언어가 주는 족쇄와 멸시의 비언어적 낙인. 다 좋은 아버지가 준 단 하나의 강렬한 나쁜 유산.


아마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지만 본인을 더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표현 방법이 서투른 사람인지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 넘길 수 있을 만큼 자아가 강하지 못했었다.


 열등감의 나락을 헤매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시작한 공부에서 그토록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어렵지만 즐기는 공부의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우고 읽을 수록 내 공부는 나와 사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였단 생각도 든다. 그 과정에서 고정 관념에 박혀 있던 틀이 깨진다.


아침 일찍  진하게 탄 믹스 커피를 들이키며 설렌다. 아들이 깨기 전, 서둘러 책을 마저 읽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자그레브에서 아침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