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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ug 28. 2020

그녀가 승진했다!

언제나 너를 응원해.



아마도 이번에는 승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밀리면 어쩌나 가족 모두가 조바심 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가 모닝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나 승진했다네."

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모두 물개 박수를 치며 너무 잘 됐다는 말을 너나 할 것 없이 반복했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입은 웃었지만, 눈시울이 너무나 뜨거워 자꾸만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삼키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자 눈물은 얼굴선을 따라 턱 밑으로 줄줄 흘렀다.


동생은 덤덤하게,

"이제야 했네."

라고 말하며 남은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쪽 빨아 마시고 창밖의 호수를 응시했다. 그녀의 올해 처음 휴가 마지막 날이었다.



 "나 따라 노량진 가서 공무원 준비하자."

"난 공무원 될 생각 없는데? 공기업 준비하려고."

"너 토익도 아직 제대로 점수 못 땄잖아. 그냥 언니 혼자 노량진 다니기 싫으니까 같이 학원 가자."


"흠, 생각해볼게."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늘 친구들에 둘러싸인 동생과 달리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혼자이지 않은 척하려고 애썼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나는 외톨이로 보이는 것은 죽어라 싫어 억지로 관계를 이어 붙이며 겨우겨우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내며 지내던 때였다. 그런데 막상 임용고시 준비를 하려고 하니, 같이 할 친구가 또 없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독서실 가고, 같이 학원 가고 할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 그때의 나는 절대적으로 이기적이었고, 고됐고, 외로워서 누구라도 다정한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때였다. 그리고 그 간극은 동생이 곧잘 메워주었다.


 공무원은 자신 인생에 단 한 줄의 희망도 아니었을 동생을 매일같이 조르고 졸라 우리는 노량진에 입성했다. 곳곳에 쓰레기 냄새, 가난한 옷차림, 유달리 추웠던 겨울. 1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때의 모든 것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그때의 나는 매일 하루하루를 이기며 살았다.


 사실 동생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학원을 두 달 과정으로 한 번 다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금 더 생각해 볼게. 내가 되고 싶은 게 공무원인지."


나는 심술을 부렸다. 그녀는 놀러 가듯 노량진 학원을 다녔고, 마지막 세 달은 진짜 열심히 해서 그녀 인생 첫 공무원 시험에서 바로 합격했다. 그리고 또 다른 지역 공무원 시험에도 중복 합격했다. 그 당시 그녀는 시험 보는 족족, 응시하는 족족 모두 합격하고 모두 당선됐다.


세상의 행운은 그녀의 손에 있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때 22살이었다. 그 부서에 최연소 타이틀을 계속 달았으며 티브이에도 몇 번 나왔다. 동기들 중에 승진도 제일 빨랐고, 예쁘고 어리고 사랑스럽고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직원이라고 소문났었다. 집 앞으로 다른 부서 공무원들의 구애 섞인 선물이 날마다 배달 왔다.


그녀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을 했다.



 딸을 낳은 그녀를 보러 두 돌 된 아들과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그녀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자, 거실 소파에 동상처럼 앉아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던 그녀는 아이를 바닥에 놓으면 계속 울고, 아이가 잠도 안 자서 그런 자세로 계속 앉아 있어야지만 된다고 했다. 깡마른 얼굴에 터진 입술로 아기가 그래도 이쁘다는 말을 했다. 새빨간 핏덩이에 지나지 않던 그 조그만 아기는 바닥에 닿기만 해도, 내가 안기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딱 그 자세로 자신의 엄마가 앉고 있어야지만 울지 않았다. 이틀 동생 집에 머물렀을 뿐인데 귀가 머는 것 같았다. 조카는 정말 힘든 아이 었다. 아들 둘 키우는 내가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예민하기 그지없는 아이 었다. 그래도 그녀는 딸아이가 너무 좋다고 했다.


"이번에 복직 못하면 승진에서 많이 밀리는데...."


그래도 어린이집을 거부하는 딸아이 때문에 딸이 3살이 되어서야 어린이집에 보내며 겨우 복직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 말라갔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결혼하더니 형편없어졌다, 역시 나이를 드니 미모도 빛을 잃는다, 아기 엄마 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잠시 그녀를 만나러 직장으로 찾아갔을 때도 사람 돌은 인사치레처럼 그런 말을 뱉었다.


"왜 화내지 않아?"


"화 내면, 내가 인정하는 게 되잖아. 변할 게 없어. 어쩔 수 없지. 이제 야근도 못하고, 걸핏하면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고 조퇴해야 하고, 연수 참석도 제대로 못하고, 나이도 들었으니 뭐라고 반박할까. 그냥 내 일을 할 수밖에.


그런데 자다가 막 화가 나. 저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남자후배들이 애 엄마는 이번 승진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대. 어이없지? 일은 개떡같이 하고 시간 외 수당 받으려고 남아 있고, 술자리는 찰떡 같이 나가면서 업무는 안 하려고 미루는데.... 그래도 애기 엄마보다는 승진을 빨리 할 거거래.더 화나는 건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는 젊은 후배들이야. 그냥 막 새벽마다 화가 나.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냥 견디는 것뿐이야."



동생이 급하게 야근해야한다며

조카의 하원을 부탁했다. 직장어린이집에서 아마도 한두 명과 남아 있을거라고.


조카는 나를 보자마자 퉁퉁 부은 눈으로 눈물을 삼키더니 이내 서럽게 울었다. 친구들과 달리기 했는데 또 꼴등했다고 더 크게 울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아 결국은 동생에게 잠깐 나와달라고 전화를 했다. 지친 얼굴로 악다구니를 쓰는 조카를 안으며 동생은 낮은 목소리로 독백하듯 말했다. 



"일등은 열심히 해도 못 할 때도 있고 아무리 애써도 안 될 때도 있어.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거야.

누구한테 보이려고 일등을 하는 건 필요없어.
아무도 너한테 일등하라고 하지 않았으니, 울지마.


끝까지 달렸으면 됐어.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으면 정말 잘 한거야. 그러니까 제발 울지마! "


동생의 낮은 목소리는 자꾸만 톤이 올라갔고 결국 조카랑 둘이 바닥에 앉아 엉엉 소리내 울었다.

그런 모습 처음이었다.


승진에서 계속 밀려, 동기들 중 유일하게 승진을 못했던 그녀가, 자존심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되 자존감 마저 버릴 수 없다던 그녀가, 결국 남자 후배한테 밀려서 자존감마저 주머니에 넣어버릴 지경이라던 그녀가 엊그제 꼴등으로 승진을 했다.

드디어 6급을 달았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녀의 승진 소식을 듣자 언젠가 보물지도 그리기 모임에 억지로 동생을 데리고 참석했을 때가 떠올랐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시각화해서 지도로 표시하는 모임이었는데, 발표 시간이 되자, 그녀는 갑자기 말을 얼버무리며 울었다.


" 다들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아는데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일이 너무 많아서 계속 하는 것 뿐이에요. 아이 챙기는 것도 바쁘고, 일도 바쁘고, 남편은 나보다 더 바쁘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는데 꿈을 갑자기 말하라고 하니 모르겠어요. 왜 나는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겠는거죠? 나는 요즘 직장에서 유리천장에 막혔다는 생각만 들어요. 내가 뚫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생각만."


많이 지쳐있던 그녀가, 드디어, 이제야 승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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