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오히려 무섭다는, 인적 없는 밤길 보다 번화가의 인적 드문 곳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고서야 무료하다 못해 지겨웠던 시골 생활이 가끔, 아주 가끔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고 자란 시골 생활이 그리워진 것은, 아이를 낳고서였고, 본격적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고민한 것은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5)을 보면 도시에서 생활하다 쫓기듯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온 이치코. 시내로 나가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작은 숲 속 같은 그곳에서 자급자족하며 농촌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친정이 시골이라지만, 나름 소도시의 아파트 생활만 하며 자랐기에 자급자족의 농촌 생활은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었다. 영화에서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왠지 모를 청량감이 돌고(영화 속에서는 후덥지근한 여름날임에도),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영화를 자극으로 아이를 데리고 틈만 나면 주말에 시골 친정집으로 향하거나 바닷가인 시댁으로 떠났다. 주말에 아파트에서 혈기왕성한 아이들과 갇혀 지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 빨리는 일이다.
아이는 정말 자연의 모든 것을 좋아했고, 나는 시골 공기에서 묻어나는 다양한 냄새를 즐겼다.
주말마다 찾아가는 자연의 맛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자주 웃었고, 실패에도 금방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지를 일이 별로 없었고, 완만한 자극에 만족했다.
느릿한 시간과 별 것 없는 지루함은 하루의 시간을 길게 늘려 주었고, 그 속에서 아이와 나는 별일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2020년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할 때, 그 무지막지한 바이러스가 사람 간 감염, 호흡기 전파로 모든 상황을 스톱시켰을 때, 시골 마당에서 아이들과 나는 여전히 자급자족으로 농사를 지으며 부지런한 노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 자체로 그냥 힐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또 '딴짓'을 결심했다. 아이의 유치원을 옮기고, 집을 옮기고 본격적인 시골 살이를 해보자고.
6평의 이동식 컨테이너냐? 2층 단독 주택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친정 부모님이 때마침 다른 지역 아파트를 분양받아 제2의 거주지를 마련하셨다. 그리고 친정집은 비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들어가면 될 일이지만 워낙 낡고 오래된 옛날 집이라 여름에는 무지막지하게 덥고, 겨울은 견디기 힘들게 춥다. 그래서 그 마을에 신축 단독 주택 단지에 빈 집을 어렵게 하나 구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마당이 없었고, 외부에 너무 노출이 된다는 점이다. 너무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친정집 담벼락에 요즘식으로 아주 잘 나오는 농막 주택을 하나 사서 갖다 놓으면 되겠다 싶은데 문제는 또 원래 34평 아파트에 가득 찬 짐을 어떻게 6평에 맞게 줄이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친구들은 이게 고민할 일이냐며, 그냥 신축 단독 주택에 들어가면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텃밭이 있는 6평 이동식 컨테이너 속 삶이 더 끌리고 있다.
그곳에서는 정말 매일매일 자연을 느끼고 일출과 일몰을 오롯이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골에서 자급자족의 농사 말고 무엇을 할 거냐고?
물론 그곳에서 딴짓을 계속할 것이다. 유치원생 두 명의 아들과 농사도 짓고, 그 둘과 경북 인근 캠핑을 다닐 것이고, 내 작은 마당에서 딴짓할 사람들을 모아 독서 모임도 하고 작은 음악회도 할 것이며 재능 나눔으로 진로코칭도 할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가 뭐 따로 있나. 여러 개의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