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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4. 2021

제가 그렇게 부족한 엄마인가요?

우선, 내 육아관을 밝히겠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10살이 될 때까지 잘 자고, 잘 먹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남들과 평가해서 자존감을 갉아먹지 않도록. 아이를  나의 자랑거리로 만들지 않고, 내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아들이 되도록.


사실, 누군들 이렇게 아이를 안 키우고 싶을까. 좋은 것 다 같다붙여서 조금이라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면, 좀 더 내가 희생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나는 요즘 불멸의 밤을 보내고 있다.


육아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맞다. 휴직하고 애보면 더 애를 잘봐야 하는 거 아닐까? 엄마표 맛깔나게 해주고..' 이런 생각도 든다.


휴직 전에는 일하고 피곤해서 집에 오면 잘 참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인내심이 바닥나곤했다. 짜증내고 화내면서 아이도 울고, 나도 울며 평일을 보내기 일쑤였다. 더 이상 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돈 벌기를 잠시 중단했다. 한창 벌고 싶은 나이에 쉬는 것이, 내 능력을 키워야 할 시기에 쉬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 더 중요한 목표는 '너그러운 엄마', '행복한 유년의 추억 만들어주기'였기 때문에 월급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너그러운 엄마가 되겠다는 나의 소신은 아이를 키우면서 곧잘 암초에 부딪혔다. 특히나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이 맞나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인들의 던진 간섭의 말들이 쌓여 자책과 불안이 한 무더기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포인트에서 그들이 그리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무수히도 들었다.


"아이는 초장에 기를 꺾어야 돼. 엄마가 애를 못 이기면 평생 애한테 끌려다녀.

"아이한테 많이 너그러우시죠?"

"화 잘 안 내시죠?"

"아이가 저런 장난쳐도 아무렇지 않으시죠?"



 그들은 나에게 양육방식이 못마땅하다는 뉘앙스를 숨기지 않았다. 대놓고 이 나이에는 이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무례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말들이 너무 불편하고 까끌해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내일은 만나지 말아야지'

 그래도 그들은 우리 아이가 밝고 재밌다며 다음 날도 놀러 오거나, 만나자고 문자 보내기도 했다. 러면 나는 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보다 싶어 또 만나러 나서곤 했다. 바보..바보..바보!



왜일까, 어느 포인트에서 내가 그렇게 혼내야 하는데 혼내지 않는 엄마로 보였을까?

지속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옳다는, 육아에 대해 확고한 전문가라는 태도를 지녔다. 그 막강한 아우라가 어쩌면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신의 씨앗을 심어 자책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만들었다.

 '유치원 선생님인데, 학교 선생님인데, 그 집 아이가 무난하게 잘 지내는데, 어쩌면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운 것은 아닐까? 내가 훈육을 너무 안 하나?'


함께 노는 동안 아이는 내가 정한 규칙 선 밖을 벗어나지 않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고, 자신과 친구를 해하거나 예의 없게 굴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도 없었다. 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내비쳤고, 잘 삐졌고, 징징거렸다. 


"이 집 아들처럼 예민하고 감정도 행동도, 두되 회전도 빠른 애가 있는데, 그 집 엄마는 단호박이에요. 강해서 애가 꼼짝 못 해. 응석을 안 받아줘."


꼼짝 못 하게, 바르게, 키우는 엄마....


나는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 그들은 내가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모습에서 나약하다고 생각했구나...


하지만 감정선이 무척이나 예민한 아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기다려주고 싶었다. 마음이란 게 확확 괜찮아지고 서운했던 마음이 바로 무던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무나 마음결이 예민하고 내성적이어서 한참을 내 마음결을 돌리는데 한참이 걸리는데....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로 사이좋게 놀라고, 바로 괜찮다고 말하길 강요하지 않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늘 생각하며 자란 터라, 차마 아들의 응석 앞에서 단호박이 될 수 없었다.


돌아와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엄마가 보기에도 내가 너무 애들을 안 잡는 것 같아? 혼내야 할 상황에 안 혼내는 것 같아?"


"뭐, 애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네가 너무 안 혼내서 놀란 적이 있었지만 뭐 그러려니 해."


또 한 번 상처 받았다.


돌 무렵, 두 돌 무렵 엄마는 아이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고 했었고, 나는 규칙을 배워나가야 하니까 좀 더 아이의 감정을 허용적으로 읽어주고 받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도 엄마는 내게 말했다.


"두고 봐라, 지금 안 잡으면 평생 고생한다.

애가 기어오를 때 꺾어야지 아니면 어른 머리 꼭대기에 올라간다."


나는 그 말이 소름 끼치게 싫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잘못된 행동을 큰 소리로, 다른 사람 앞에서 마구 지적하고 혼냈던 사람들, 부모와 친척과, 교사들의 무신경함에 놀란 적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언젠가 아이가 4살 때 말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혼내지 마세요.

너무 기분이 나빠요.

 자꾸 가르쳐준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내가 잘못하면 화부터 내니까 기분이 나빠요."


차분히 단호하게 잘못된 행동을 적하면,

  "나도 잘못 했다는 거 알아요.

생각하고 있었어!

친절하게 말하지만 나 혼내는 거잖아!"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은 섬세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하고 '화'가 많은 나에게, 야단치는 방법으로 배우고 자란 것밖에 모르는 나에게 감정선이 예민하고 자존심이 센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고 자기반성하게 만드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렸고 늘 인내심을 가져야했다.




내가 이런 속상함을 단짝인 동생에게 토로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가 시간이 많으니까 사람을 요즘 많이 만났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어떤 줄 알아?

그 수만큼 육아 고수들의 잔소리를 듣게 되는 거야.

다 자기들의 방식에 대해 나름 확신과 소신이 있거든. 


언나가 봐도 내가 내 딸을 과잉보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 그런데 얘가 피곤하면 정신없이 앞도 안 보고 내달려서 팔도 빠진 적이 있고 넘어져 응급실 간 적도 많아서 그래. 봐. 속사정은 다 모르는 거잖아. 누구나 못마땅해 보이는 모습이 있기 마련이지.



 우리가 수많은 훈육과 엄한 부모님 밑에서 배우면서 가르쳐준답시고 얼마나 혼나고 자랐어?

남는 것 수치였어.

아이들마다 다른 걸, 그런 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자기 전 곰곰히 생각했다.

나는 강점 진단에서  70프로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고, 같이 우울해하거나 기뻐하는 감정을 가지는것은 어쩔 수 없이 내 결이다. 그래서 마음이 약하다고 참 많은 참견을 받으며 살았다. 그 참견에 휘둘렸다가 정말 상처도 받으면서 어떤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휘둘리지마.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 '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했던 공부와, 시간과 노력들을 타인의 눈에 위해 재단하지 않으려 한다. 뭐, 천기저귀 쓰고, 모유수유 2년 하고, 유아식을 유기농으로 매끼 만들어 먹이고, 지금껏 외식 대신 자연 밥상 차리려 하고, 책은 꼭 꼭 읽어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육아방식을 접할 땐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해주지 못하는 것에 자꾸 집착해 이것 때문에 나중에 혹시 후회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불멸의 밤을 마치고 숙면을 취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말을 아이에게 주어야겠다. 뭐 어떻게든 후회야 남겠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결을 강제로 쥐고 규정짓고 싶진 않다. 매일의 절망과 후회를 접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자겠다.


"이만하면 잘 한 거 아니야?

많이 안아주고 눈 맞춰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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