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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6. 2021

시골에서 봄을 보낸다는 것

"아이들이 사이 부쩍 컸네."


엄마가 아침 텃밭에서 따온 채소를 씻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응. 그렇지? 아이들이 정말 기가 살았어."


나 역시 아침 상을 차리며 마당에서 아침부터 벌레 찾기에 나선 아들 둘을 창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맞장구쳤다.


정말이다.


트렁크에 겨울옷과 봄옷을 적당한 비율로 챙기고 동화책만 챙겨서 내려온 것이 3월 1일이었는데, 2달이 흘렀다.


들 둘은 정말이지 기가 살았다.


나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돌담 너머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 '동네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듣는다. 동네에는 요만한 아이들이 없어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더구나 작은 동네라 누구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에 대해 알고 있고 친절하다.


 아이들은 부모, 외조부모가 뿌려놓은 관계의 덕을 독특히 보고 있다. 따뜻한 호의 말이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혹한 용기를 요구했고 곧잘 무안한 상황에 맞닥뜨리곤 했다. 간혹 어떤 분은 인사를 살갑게 받아주시지만 대부분은 핸드폰을 보거나 모른 척한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연결고리 하나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할 경우의 수가 적어서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와 나는 멋쩍을 때가 많았다.



아이는 시골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자신감이 묻어난다.



아이들은 매일 모험의 시간을 가진다.


등 하원 시간, "빨리 가자"라는 말이 수십 번 더 나오는 걸 누르며 아이와 함께 걷는 그 길 사이에 아이들이 할 일은 참으로 많다.


꽃다발 만들어 선생님께 드리기는 일상이며 봄날의 특혜다. 아이가 꺾는 꽃이 마음 아프지만, 미리 훈계를 주지 않으려고 나는 "꺽지마"라는 말을 삼킨다. 선생님은 아이의 꽃다발에 활짝 웃으실 것이므로.



길 가던 아이는 번번이 꽃 이름과 나무 이름을 묻는다. 모르겠다는 엄마의 대답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꾸 물어 핸드폰으로 꽃 이름 찾기를 수십 번 하며 집으로 오게 된다.


동네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잘하면 동네 누나를 만나 함께 간식을 나눠주고 강아지들 산책을 시킨다. 새끼 고양이가 얼마나 컸는지 살피는 일도 아이들 몫이다.


그렇게 하원 하여 집으로 오면,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의 텃밭을 함께 일구는 것. 거의 돌밭이다시피 한 밭을 일구는데, 아들들은 생색내기 일쑤다.


"유치원에서도 농사짓고 왔는데, 집에서도 농사 천지네."


그렇게 밥 먹고, 씻고 하면 금세 시골의 밤은 찾아오고 어둠 속에서 우리는 온갖 생경한 소리를 듣게 된다. 고리니 울음소리, 처음 들어보는 산짐승 울음소리와, 새소리.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다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7살 아이 침착하게 말한다.


"엄마, 화장실에 지네 죽어 있어요. 손바닥만 하네. 그리고 보일러실 천장에 고양이 들어온 것 같아요. 환풍기는 안 틀었어. 새가 환풍기 통로에 둥지를 틀었다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두 달만에 다시 만난 여동생은 조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아이들이 단단해졌네."


"2달 만에 키가 컸지? 얼굴도 많이 타고. 주근깨도 생기더라."


"그것도 그런데, 놀고 있는 것 보니까 뭔가 되게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시골에서 봄을 보내면서 나 역시 좀 더 단단해졌다.


코로나로 약간의 우울감이 들었던 엄마와 다정한 시간도 보냈고 엄마를 좀 더 해하고 사랑하게 됐달까. 순식간에 퍼지는 초록산을 보며 문득 엄마의 부족한 점, 내가 받았던 상처 그런 것에 몰두하기엔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말처럼 수시로 지인들의 부모님, 이젠 지인들의 부고 문자까지 받게 되다니 언제 우리의 생이 마감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건강하게 우울의 빛을 걷고 웃으니 내 인생도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내 옆에서 웃고 있다, 엄마가!

엄마는 특히나 그녀가 가꾼 텃밭을 사랑했다. 텃밭의  생명을 감탄하고, 그리고, 먹으면서 다시금 생기를 머금었다, 봄의 들판처럼.

그리고 나는 일렁이는 녹색의 산빛을 보며 내면에 일렁이는 나의 생각들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떠나 오기 전 나는 아무리 애써도 터무니없고, 부족하고, 미약한 일개 하나의 인간종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고개를 저봐도 마음속엔  딱히 이룬 것 없는 생이란 자기 비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평범도 벅찬 인간이지만 침묵의 겨울산을 이렇게 푸르게 물들인 생명들을 날마다 지켜보며 힘을 얻는다. 나무들처럼 오로지 자기의 삶 하나에 충실하자고. 스스로 비하하고 남과 비교하며 부족함에 몰두했던 철없음을 그만두자고.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나의 삶을 긍정하는 법을 시골에서 봄을 보내며 지혜로 아로새겼다. 황량한 산이 초록으로 되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충실한 생명의 부지런함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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