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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un 09. 2021

어촌 남자의 농촌 적응기

 남편이 긴 항해를 끝내고 돌아왔다.


쾌적한 경기도의 신도시 아파트에서 쉴 틈도 없이  정신없이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싸서 그를 납치하다시피 시골로 데리고 왔다. (나에게 시골의 기준은 음식 배달이 되는 지역이냐, 인근에 병원이 있느냐인데 둘 다 해당하지 않으므로)



하필이면 더위에 취약한 남자가 그 선선하고 좋은 날들이 지나고 더위가 슬슬 시동을 걸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에 휴가를 왔다.



보리 서말만 있어도 안 한다는 처가살이를 그것도 70년 된 농가에서 아내와 자식과 한날 한 시라도 더 붙어 있고 싶다고 기꺼이 들어온 남편은, '와~ 정말 좋다.'를 남발하고 있다. 그 좋다가 끝까지 좋아야 할 텐데 말이다.


아침 준비를 하며 남편에게 텃밭에 상추를 따오라 했더니 정말 상추 모종을 '따'왔다.



이게 아니라고, 밑 잎부터 밑으로 눌렀다 들어 올리며 한 잎씩 따먹는 거라고, 상추쌈 안 싸 먹어봤냐고 놀렸더니, 이 남자 장모님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혼나게 생겼다고 정색을 했다.


옆에서 아이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아빠~ 우리가 농사 알려줄게."

"에이~ 이렇게 따면 할머니한테 혼나는데~"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귀엽다는 듯 사위가 딴 상추를 보고 크게 웃고 넘어가셨다. 텃밭과 꽃에 진심인 엄마가 이리 사위에게 후한 걸 보면 아마 사위 사랑은 장모인가 보다.


한 평생 어촌을 떠나지 않았던 남자가 이제 생애 첫 시골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그저 그가 나와 기꺼이 함께 해 주어 행복할 따름이다. 그저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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