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시골에서 일 년 살기를 시작하는 이유가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상주에서 1년 살기를 주제로 다큐를 찍기로 한 날 일주일 전, 갑자기 머릿속에 남는 이유가 흐지부지 해졌다.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져서인가,
우리의 모습이 혹시 비난받을까 봐 움츠려들어서일까.
이 곳에 온 이유가 합당한 명분이 있어 보일까 걱정해서일까.
나는 어떤 이유로 여기 상주로 왔을까.
아이들 때문이었을까, 나를 위해서였을까, 부모님 때문이었을까......
자연을 좋아해서였을까, 쉬고 싶어서였을까, 나의 쓸모를 새삼 찾고 싶어서였을까, 글을 쓰고 싶어서였을까, 놀고 싶어서였을까.
상주로 오기로 한 이유는 여러 가지 사안이 촘촘히 엮여있었다.
우선은 육아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이 항해를 나가면 친정식구들이 많이 도움을 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잘 외로워졌다. 아이들의 성장과 하루의 에피소드를 남편과 나누지 못함에, 육아를 기반으로 한 어른의 대화를 솔직하게 나누지 못함에 깊은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시대와 다르게 핵가족이 된 우리 가족에서 중심은 '내'가 되어야 했다. 남편이 항해하는 사이 내가 많은 사항을 결정하고 챙겨야 했다. 무엇이 잘 못 됐는지, 부족한지 끊임없이 살펴보다 지쳐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고 피곤한 엄마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와 이 소중한 시간을, 어려움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내 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이런 생각도 자주 들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한번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건 부모가 되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내가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시 여기느냐를 정하는 문제와 밀접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부모마다 다양할진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사랑'과 '행복'이었다. 그건 무척이나 명확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명예나, 성공보다는 '사랑'이었다. 사랑은 흔하고 명확한 목표지만 추상적인 영역이다.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에 관한 방법도 수만 가지일 수밖에.
나에게 '사랑'은 '자주', '자세히' 보는 것이었다. 날개를 꺾어 옆에 두려 하지 않고 그 결 그대로를 인정해주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언젠가 그의 결대로 어른이 돼 자립하는 순간이 오기 전 '자세히', '자주' 아이를 바라보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공간에서 보내고 싶었다.
나의 육아와 삶의 가치관에 더해, 아이가 학교에 가면 쓸 육아휴직을 끌어다 쓰며 꾸역꾸역 상주로 내려온 이유에는 아무래도 코로나의 영향도 컸다.
동생이, '엄마가 가끔 시골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대'라고 엄마의 마음을 전했을 때,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생각했다. 엄마의 코로나 블루, 아이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들의 유대를, 아직 나는 엄마가 너무나 필요하고, 소중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지금 제대로 표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일하고, 돈도 벌고, 효율적으로 휴직을 해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게 쓰는 것도 나에겐 중요하지만,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여기, 행복'하고 '사랑'하고 싶었다.
우리의 미래는,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특별할 것 없는,
도시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반복되는 시골에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얻고, 버렸는지 따지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특별할 것 없이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약간의 우울과 지루함, 불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낌없이 사랑하고 행복하려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음에도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음에 제대로 한 시절을 산다는 느낌'이 드는 아이러니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