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개들은 집을 지키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 의무만이 그들의 생의 이유인듯, 한 골목을 다 지나갈 때까지 '미친듯이' 짖는다. 귀가 찢어지도록, 철문을 뛰어넘어 달려들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강한 불안과 두려움이 가슴을 쥐어 뜯는듯한 느낌으로 일도록.
"시골의 개들은 묶여 있어서 그래요. 아무도 산책을 안 시키거든. 본능이 있는데 목줄에 매여 마당 한 자리에서 똥싸고 오줌싸고 밥 먹으면서 늙어 죽는 거에요. 그래서 행복하지 않아 마음의 병 때문에 저렇게 짖어대는 거에요."
'개'라면 사죽을 못 써, 동네 유기견의 간식까지 챙기는 동네의 친구가 미친듯이 사납게 짖는 개들이 있는 집앞을 지나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의사소통'이 안 되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내 의사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들의 의사를 알 수 없으니 불시에 공격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어쨌거나 길을 걸을 때 동네 유기견들이 따라와 내 발목을 핥을 땐 얼음이 되어서 막 달려나가고 싶어진다. 아마 저 골목을 지나면 한 달 전쯤부터 갑자기 나타난 유기견이 우릴 따라 올 것이다.
예상 적중!
아이들이 '하양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그 유기견은 이미 때로 얼룩져 '갈색+회색'이다. 하양이는 우리를 발견하자 풀을 뜯고 있다가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어와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친구는 유기견에게 줄 간식을 준비해왔다며 꺼내 먹였다.
정말이지 하양이는 간식을 먹다말고 길 건너 두어 명의 60대 여인들이 운동하듯 빠른 보폭으로 지나가자 얼른 뛰어가 그들 앞에서 한동안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우리 쪽으로 다시 왔다. 그 모습이 마치 '이번에도 그녀가 아니네'라는 시련당한 남자의 모습같아 마음이 찡했다.
아들과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
"엄마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려."
아들이 문을 열자 대문 앞에는 하양이가 서 있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안 되는데. 엄마가 개 싫어하는데. 하양아, 우리집에는 못 들어와."
하양이는 꼬리를 추욱 내리고 집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들어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더니 이내 마당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개 사료가 없는 집이라 무엇을 줘야할 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하양이는 개구멍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리 식구들이 치킨을 먹을 때 하양이는 대문 앞에서 한참 낑낑거렸다. 그리고는 대문 밑 틈으로 들어와 마당 식탁 옆에 다소곳이 앉아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봐 치킨이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비오는 날, 하양이는 옆집 곶감이(강아지 이름) 밥을 나눠먹다가 우리를 보고 곧잘 따라왔으며 또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 그녀들을 따라가 얼굴을 확인했다.
그 모습은,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아련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책임감 없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겨났다.
"왜? 왜 널 이런 산밑 동네에 버렸을까.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 너는 끝끝내 너의 주인을 잊지 못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널 버리고 갔을까."
아이를 키우며 감정도 체력도 극한으로 소진되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다. 내 삶이 조금 편했으면하는 '간사한 마음'이 들 때마다 삶의 의미를 다잡고 살아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과 '유대'다. 나를 엄마라고, 보호자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믿고 자라주는 아이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양이'라는 유기견을 볼때마다 아마 이 개의 행동으로 보건데 한 때 주인으로부터 무척이나 살아받고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준비도 없이 일방적으로 버려졌을 이 잘생긴 개는 오늘도 중년의 여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러 다닌다. 하양이를 보면 동물에게 무심하던 나조차 마음이 동하며 살아있는 것들과 사랑과 변심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