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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31. 2021

혹시 당신이 '사랑했던 개'입니까?

시골의 개들은 평화롭게 생을 산다. 

시골의 개들은 집을 지키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 의무만이 그들의 생의 이유인듯, 한 골목을 다 지나갈 때까지 '미친듯이' 짖는다. 귀가 찢어지도록, 철문을 뛰어넘어 달려들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강한 불안과 두려움이 가슴을 쥐어 뜯는 듯한 느낌으로 일도록.


"시골의 개들은 묶여 있어서 그래요. 아무도 산책을 안 시키거든. 본능이 있는데 목줄에 매여 마당 한 자리에서 똥싸고 오줌싸고 밥 먹으면서 늙어 죽는 거에요. 그래서 행복하지 않아 마음의 병 때문에 저렇게 짖어대는 거에요."


 '개'라면 사죽을 못 써, 동네 유기견의 간식까지 챙기는 동네의 친구가 미친듯이 사납게 짖는 개들이 있는 집앞을 지나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의사소통'이 안 되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내 의사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들의 의사를 알 수 없으니 불시에 공격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어쨌거나 길을 걸을 때 동네 유기견들이 따라와 내 발목을 핥을 땐 얼음이 되어서 막 달려나가고 싶어진다. 아마 저 골목을 지나면 한 달 전쯤부터 갑자기 나타난 유기견이 우릴 따라 올 것이다.


예상 적중!


아이들이 '하양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그 유기견은 이미 때로 얼룩져 '갈색+회색'이다. 하양이는 우리를 발견하자 풀을 뜯고 있다가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어와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친구는 유기견에게 줄 간식을 준비해왔다며 꺼내 먹였다.


"아마, 얘 주인은 분명 여자였을 거야. 나랑 있다가도 50대 아줌마들이 지나가면 따라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오거든요."


정말이지 하양이는 식을 먹다말고  건너 두어 명의 60대 여인들이 운동하듯 빠른 보폭으로 지나가자 얼른 뛰어가 그들 앞에서 한동안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우리 쪽으로 다시 왔다. 그 모습이 마치 '이번에도 그녀가 아니네'라는 시련당한 남자의 모습같아 마음이 찡했다.


아들과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


"엄마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려."


아들이 문을 열자 대문 앞에는 하양이가 서 있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안 되는데. 엄마가 개 싫어하는데. 하양아, 우리집에는 못 들어와."


하양이는 꼬리를 추욱 내리고 집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들어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더니 이내 마당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개 사료가 없는 집이라 무엇을 줘야할 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하양이는 개구멍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리 식구들이 치킨을 먹을 때 하양이는 대문 앞에서 한참 낑낑거렸다. 그리고는 대문 밑 틈으로 들어와 마당 식탁 옆에 다소곳이 앉아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봐 치킨이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비오는 날, 하양이는 옆집 곶감이(강아지 이름) 밥을 나눠먹다가 우리를 보고 곧잘 따라왔으며 또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 그녀들을 따라가 얼굴을 확인했다.


그 모습은,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아련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책임감 없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겨났다.


"왜? 왜 널 이런 산밑 동네에 버렸을까.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 너는 끝끝내 너의 주인을 잊지 못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널 버리고 갔을까."


아이를 키우며 감정도 체력도 극한으로 소진되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다. 내 삶이 조금 편했으면하는 '간사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의 의미를 다잡고 살아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과 '유대'다. 나를 엄마라고, 보호자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믿고 자라주는 아이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양이'라는 유기견을 볼때마다 아마 이 개의 행동으로 보건데 한 때 주인으로부터 무척이나 살아받고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준비도 없이 일방적으로 버려졌을  이 잘생긴 개는 오늘도 중년의 여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러 다닌다. 하양이를 보면 동물에게 무심하던 나조차 마음이 동하며 살아있는 것들과 사랑과 변심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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