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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07. 2021

남편 없는 결혼기념일

결혼 생활의 사랑에 대해

 남편도 나도 기념일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챙겨주면 좋고 안 챙겨주면 서운하고 못 만나면 알아서 내가 챙기고. 그런 사람을 만났고, 나도 그런 사람이다.


 남편은 어젯밤 통화가 됐다며 기뻐했다. 위성 전화로 연결되는 동안 수없이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오갔고, 신호만 왔다 끊기는 게 여러 번.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기대했다가 연결이 안 되자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 된다, 돼! 아휴~ 이렇게 얼굴이라도 보니까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이제 살 것 같아. 모두 보고 싶어!"


우리의 인내심이 바닥 날쯤 연결된 위성 전화는 1-2초 늦게 송수신이 되는 통에 대화는 자주 어긋나고 영상도 자주 멈춰 아이들의 집중력은 곧잘 흐트러졌지만 나 역시 그냥 남편의 얼굴이 반가웠다.


 이번 승선은 남편에게 좀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여러 가지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배에 올랐다. 이번에는 당연히 승진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믿음직하다는 이유를 대며 이번 어려운 일을 처리하면 승진시키겠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뭐, 내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선택권이 없는 걸."


 승선을 앞두고 남편은 좀 예민했고 나는 눈치 보며 그 예민함을 끌어안다가 결국엔  역시 화를 좀 내며,


"회사가 그렇지! 뭐 사원 생각해주는 데가 어딨어? 각자도생이지. 싫은 말도 좀 하고 큰 소리도 좀 쳐. 맨날 주는 대로 군말 없이 하니까 어려운 일만 생기면 자기한테 연락 오잖아! 어려운 건 다  시키고 사람 희망 고문하게 만들고."


나도 못하는 걸 남편한테 싫은 소리 하고 앓는 소리 하며 살라며 소리쳤고, 말 한마디 안 하는 냉전의 1박 2일을 보내다가  승선을 바로 앞두고 급 화해했었다.(남편이 집 나가겠다고 해서...)


전화를 끊을라는 찰나,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함께 못하네. 선물 못해서 서운해하지 마. 다음 휴가 때 좋은 거 사줄게!"

라고 했다.


아, 우리 결혼기념일이구나.



남편은 지금 싱가포르를 통항하고 있다고 했고 다음 달에는 통영으로 입항하는데 도크라 한국에서 한 달 머문다고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남편이 알려줘서 알게 된 결혼기념일에 나는 글을 하나 써서 선물로 남편에게 보내기로 한다.


항해 중인 남편에게 기프트콘이나 용돈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므로. 지금 당장 오늘의 선물로 남편에게 보내는 글.


생일, 결혼기념일, 뭐 그런 자잘한 기념일을 항해사인 남편을 만나면서 부러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하며 살고 있다. 또 그러니 서운함도 별로 없는 것이 그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기에.


 늘 사랑 앞에 겁 많고, 감정에 서툴렀던 나는 남편이 사랑해주면 그저 잘 받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행동이 달라지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고 남편에게 신경 쓴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엔 '남편의 의사' 따윈 없기도 해서 자주 다투기도 했다.  다툴 때마다 하나씩 배워갔다.


 특히나 지난해, 7개월 동안 남편을 못 만나고 통화도 뜸하자 마음이 뭔가 식어가는 걸 느끼기도 했다. 막연히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하다고, 환경이 그렇다고, 신경 쓰지 않으면 돌이킬 수없이 내 마음이 멀어져 버릴까 봐 겁나기도 했다. 그래서 휴가엔 남편과 정말 다정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이들을 맡기고 여행도 가며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연애 4년, 결혼 8년, 타인과 자의로 이렇게 긴 시간 진득하게 인연을 이어가는 과정에 노력이 없을 수 없었다. 노력하기를 그만두는 순간 관계란 건 쉽게 깨지기 일 쑤 이므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잘 지내기 위해 진짜 사랑하는 법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고 있다. 20년, 30년이 되면 또 그만큼의 노력과 경험이 쌓이게 되겠지. 아직 사랑의 실체를 잘 모르겠다, 알 듯하면서도 알았단 생각이 들면 막상 또 상처와 시련이 찾아오니까.



 남편 없는 결혼기념일에 쓰는 편지에 사랑 시를 넣으려고 하다 보니 우리의 인생을 담은 시가 생각나 담는다.


인생과 사랑의 이름은 다르지 않으니. 그도 그리 생각할 거라 짐작해 본다. 우리는 주어진 생에서 하나의 놀이로 배우고 아끼고 보듬으며 나아가다 마침표를 찍을 테니.


그렇게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우리 아이들을 매번 경험하고 느끼며 배워가겠지. 당신이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공백을 나는 나의  터전에서 당신은 그 곳에서 맡은 바 생을 일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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