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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0. 2021

다정하고, 잉여로운 나의 휴직 생활

시골로 내려온 지, 6개월.

친구들은 한창 부장으로,  승진 준비로, 자기 커리어 쌓거나 자기 계발하며 마흔을 보내고 있다. 그녀들은 고맙게도 잊지 않고 시골에서 뭐 하고 있냐고, 안부를 건넨다.


뭐, 때론 비생산적인 일도 하고,

생산적인 일도 하는데 대체로 빈둥거리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고 하며 지내고 있다. 신기한 것은 별 의도 없이 그냥 한 비생산적인 일이 생산적인 일로도 연결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려 갓 어린이집을 다닐 즈음엔 휴직이 좋지만은 않았다. 첫째가 3살 때까지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둘째가 태어나서는 돌이 되기도 전에 그 둘을 동네 어린이집 티오가 생겨 내 의사와 상관없이 보내야 했다.  대기가 백여 명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 당시 서툰 엄마는 버벅거렸고 다른 가정의 육아에 대해 곁눈질하기 바빴다. 복직하고서는 뭐 내 육아 철학이랄 게 있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렇게  피곤에 절어 아이를 혼내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이가 1학년이 되기 전 자연 속에서 다정하게 한 시절을 보내고 싶었던 바람은 실현되었다. 계획대로는 어느 낯선 곳에서 한 달 살 이하다 오자, 였는데 코로나도 터지고 나도 너무 지쳤고, 남편은 더 장기간 승선하게 되고, 엄마 아빠 더 늙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스스로도 좀 돌보고 싶었고. 사회적 성장이나 돈을 모으고 싶은 열망보다 관계에 더 중점을 두니 시골로 떠나오긴 생각보다 쉬운 일이 되더라.


그렇게 내려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사이, 나는 오롯이 그 6시간을 나에게 쓰고 있다. 읽고 쓰고 걷고 자고, 보고 들으며. 자연 속에서 자세히 보고, 들으며 느낀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임을 새삼 몸소 느끼며.


 타박타박 잉여인간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 걷다 보면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방치되거나 해결되지 않았던 내면의 문제들이 저절로 두둥실 떠올랐다. 걸으며 풍경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그것들을 복기한다. 그리고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쓴다.


 기록하며 나는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직면하기도 하고 뭐, 토닥이기도 했다. 거의 수치의 기억이므로 그런 쓰다듬음이 지나가면 또 괜찮아졌다. 그러고 나면 나는 한 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것은 꽤 괜찮은 일이었다.


방치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나를 생각하는 것, 내 주위를 생각하는 것, 뭐 그런 일들이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헛된 꿈을 꾸게 하는 일을 부질없게 만든다. 타인과 비교해서 나를 갉아먹는 일도 그만두게 한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내 아이를 보게 한다.


잉여로운 휴직 생활이 분노를 삭이고,

다시 돌아가 급여 노동자로 도시의 삶을 살아낼 때, 이 시간을 잊지 말자고, 돌아가서는 좀 달라진 나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응원하며 오늘도 거리를 거닌다.


잉여롭게, 느긋하게, 생산적으로 또는 비생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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