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친구 엄마
현숙 아줌마의 다정한 위로 _ 2
그 시절 나에게 다정했던 현숙 아줌마와 지선이로부터 멀어졌다. 의도적으로. 그럴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요상한 기분도 들었다. 지선이는 눈치가 빠른 아이었다. 몇 번의 용기로 나에게 다가왔다가 상처받는 얼굴로 돌아섰던 지선이는 더는 나를 아는 체하지 않았다.
우리는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사소하고 같지 않은 이유로 좋은 사람들을 외면했던가, 조소하며 버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럴 때면 정말이지 조그마한 마음으로 살아온 인생이 싫어진다. 다시 한번 지선이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친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만큼 성숙했으니.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나는 걷기로 한다. 어디까지 걸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현숙 아줌마의 빵집 앞에 가보기로 마음먹는다. 아파트 앞에서 빵집을 하다 어느 사이엔가 지선이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사라졌던 빵집은 몇 년 후 시장 골목 어디 즈음에 다시 생겼다고 동창들이 전해주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지선이는 어느 봉사단체에서 만난 유명 연예인과 비밀 연애를 했다고도 했고, 글로벌 자선단체에 입사한 후에는 중동 남자와 연애 중이라고도 했다. 친구들이 알려준 지선이의 SNS에서 나는 많은 날 밤, 몰래몰래 그녀를 좇고 있었다. 지선이는 나와 친구였을 때보다 더 밝고 예쁘고 똑똑해지고 있었다. 나날이 빛났던 SNS는 30대 어느 순간에 멈춰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피드를 보며 그녀의 현재를 상상했고 조금은 그녀가 불행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불행해서 다시 만났을 때 감당하지 못할 간격이 흐르지 않기를.
현숙 아줌마는 지선이가 유학 갔다가 거기서 취업을 하게 되자 고향에 홀로 돌아와 하던 일을 하는 듯했다. 현숙 아줌마의 빵집을 우연히 발견한 동창을 통해 아줌마는 명절에도 혼자 빵집을 열고 일요일에도 빵집을 열고 프랜차이즈 빵집에 치여 잘 팔리지도 않는 빵을 매일 굽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공부 잘하고 착하고 예쁜 그녀의 딸은 일 년 내내 찾아오지 않는 듯하다고.
내가 시장 골목골목을 헤매다 빵집 앞에 섰을 땐 이미 저녁을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있을 때였다. 팔리지 않는 빵들이 수북한 빵집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냥 순댓국이나 먹고 가자는 마음이 들 때였다. 아무도 없었던 빵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저녁 공기를 따스하게 휘감는 빵 냄새가 인기척보다 먼저 움직였다. 현숙 아줌마는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갓 구운 소보로 빵을 들고 나오다 우뚝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빵집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면서 발견했다. 현숙 아줌마의 얼굴에 세포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줌마는 내가 누군지 확인하려고 두 눈을 찡그리고 실눈을 만들어 가만히 응시하다가 동그랗고 순순한 눈망울이 자꾸만 커져갔다. 그럴수록 입은 벌어졌고 얼굴의 주름도 펴졌다. 아줌마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마침내.
나를 모른 척하면 어쩌나, 그때 왜 지선이와 멀어졌는지 탓하면 어쩌나, 나를 몰라보면 어쩌냐, 아니 알아보면 어쩌나 걸으면서 가졌던 나만의 생각들이 휘발되고 마침내 아줌마와 내가 조우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아줌마, 지선이 친구.... "
"알지, 알지, 알다마다. 와주어 고맙다. 오늘 왜인지 빵을 굽고 싶더라니. 네가 오려고 소보로 빵을 굽고 싶은 저녁이었나 보구나. 고맙다. 아이고, 고마운 사람. 어여쁜 사람."
나는 하나밖에 없는, 식탁에서나 있을 법한 식탁에 앉아서 현숙 아줌마가 내어준 소보로 빵과 우유를 순순히 먹었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서 나는 목이 매일 때마다 눈물이 날 때마다 자꾸만 빵을 더 베어 물었다.
"지선이가 보냈나 보구나. 오늘 네가 나를 만나러 오다니."
"아니요, 저 지선이랑 연락 안 한 줄 오래됐어요. 그런데 아줌마가 여기 빵집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한 번 와보고 싶어서, 꼭 오고 싶어서 잠깐 보고 갈려고 했는데. 지선이도 만나고 싶어요. 소식 들었어요. 지선이 해외에서 취업해서 엄청 잘 나간다고."
"지선이가 보냈구나. 너를."
현숙 아줌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한 번 더 지선이가 어떻게 지내냐는 말을 큰 목소리로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다, 지선이가 보냈구나, 너를...
나는 소보로 빵을 두 개나 허겁지겁 먹었기에 우유를 더 마시고 싶었지만 현숙 아주머니가 너무나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이 강렬하고 애달프고 진했기에 목마름을 참아보기로 했다.
현숙 아줌마는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메마르고 주름 많은 손이었다. 거칠고 두꺼운 손이었다.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양손으로 덮고 또 덮으며, 쓰다듬었다.
"씩씩하게 살아내야 해여, 꼭."
나는 순간 현숙 아줌마가 뭔가 나에 대해 알고 있나 싶어 놀랐다. 내가 남편을 잃고, 아이도 잃고 혼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확인하고 싶었다.
"너는 살아있어서 참말로 고마워여. 참말로."
너는? 너는 이라니. 나는 현숙 아줌마의 말을 삼켰다. 묻고 싶지만 묻지 않았다. 알고 싶었지만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미묘하게 얽혔다.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어요, 아줌마. 조용히 속으로 독백을 삼켰다.
현숙 아줌마는 조용히 흐느끼는 나를 보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기에 나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그 겨울 초입에 현숙 아줌마 앞에서 산더미같이 쌓인 소보로 빵을 앞에 두고 꺼이꺼이 울었다. 윤이 떠나고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와서 지내는 동안,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물기가 모두 쏟아져 내렸다.
현숙 아줌마가 내 손을 잡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