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의 맨발의 춤 1
지난겨울, 꼬박 시골집에 들어앉아 마당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가을에 거둔 고구마도 구워 먹고 옥수수, 감자도 구워 먹으며 나는 이유 없이 웃었다. 피식피식. 윤은 구황작물을 극심히 싫어했다. 된장찌개에 감자도 건저 먹지 않고, 초여름의 초당옥수수의 달달함도 싫다고 했다.
"구황작물을 보면 나 같아. 불순한 기상조건에서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작물들. 가뭄이나 장마에 지지 않고 기근이 심해도 살아남지만 결국 다른 생명체들의 주식으로 대용되는 작물들."
나는 윤의 말을 들으며 무거운 슬픔을 벗어나고 싶어 짐짓 가볍게 이렇게 말했다.
"옥수수도 구황작물인가? 아니지 않아?"
아직도 옥수수가 구황작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윤 없이 지낸 시골 텃밭에서 옥수수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으니 기근이 심해도 살아남는 구황작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윤이 떠난 후, 윤이 싫어하던 고구마, 감자, 메밀 같은 구황작물을 자주 먹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가 싫어했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윤과 너무 닮아서 자꾸만 손이 갔고 먹다가 웃다가 울었다. 어쩌면 피식피식 웃는 것은 나의 질 나쁜 버릇이었고 짙은 슬픔에 들어가기 전, 깊은 생각에 빠지기 직전의 전조증상 같은 의식이었다.
고구마도 옥수수도 감자도 몽땅 떨어졌을 때 봄이 왔다. 그다지 따뜻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쌀쌀맞지도 않은 견딜만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빵을 사러 나왔다. 시내에서 빵을 사고 손님 드문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때 나는 빛나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낡은 트럭에서 있는 요령을 다해 내려서 힘차게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인적 없는 시골 거리에서 그는 봄바람과 함께 춤을 추었다. 한 뼘 반 정도 짧은 왼쪽 다리가 그를 춤추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씩씩하게 걸었다.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판판한 거리를 걸을 때마다 자기 안의 불균형이 그를 춤추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기우뚱한 걸음걸이가 빨라서 감탄하고 굳게 다문 입술에서 경건함이 느껴져서 조용히 흐느꼈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마음이 흔들릴까 조심스러워 걸음도 살금살금 걸었는데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내 안의 불균형이 시소를 탔다. 윤을 보고 싶은 마음과 얼른 잊혔으면 하는 마음과 내 안의 절망과 우울이 매듭지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이제는 좀 편해지고 싶다는 희망과 자책.
고개를 들어 조용히 감정을 삼키고 있을 때 하얀 셔츠와 밝은 청바지를 입은 잘 생긴 청년이 카페로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었다. 얼굴에 신중함이 넘쳐서 어린 나이지만 성숙하고 젊잖아 보였다. 그는 천천히 걸었다. 그는 조용한 춤을 추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그 조용한 춤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처럼 춤을 추며 걸었다.
왜 이 동네에는 이렇게 춤추는 사람이 많을까 생각하다 문득 신혜가 떠올랐다. 추억의 깊은 시간을 거슬러온 신혜의 뼈아픈 말 한마디가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너도, 너도 언젠가 살다 보면 지독한 상처를 가지게 될 거야. 내가 너 그렇게 되라고 기도할 거야. 밤낮으로. 나쁜 년."
신혜는 착하고 말이 없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고 청순했고 나에게는 호의적이었다. 신혜는 나쁜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전교생 중에서 아마 나만 유일무이하게 나쁜 말을 들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혜의 한 마디로 전교생 중에서 가장 나쁜 년이 되었다. 마음이 날 뛰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약자에게 못되게 구는 비겁한 애라는 딱지를 달았다.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