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는 체육시간마다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가 운동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혜의 눈에는 어떤 욕망 같은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기에 신혜가 운동장을 돌고 족구나 피구를 하고 농구를 하는 우리를 부러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혜는 말간 표정을 하고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신혜를 잘 챙기는 친구가 두어 명 항상 옆에 있었다. 선생님의 부탁을 받은 것인지, 워낙 봉사심이 많은 것인지, 신혜가 좋아서 그런 것인지. 신혜는 그 친구들 덕에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인상이 들었다. 체육시간만 빼고. 오히려 신혜는 체육시간에 혼자가 되어 있는 시간에 더 신혜답게 빛났다.
고입을 위해 실기 점수를 받아야 하니 신혜는 실기시험이 있는 날이면 나무 그늘 밑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우리들 무리로 다가왔다. 농구도, 줄넘기도, 뜀틀도 모두 시늉만 했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신혜의 시도를 숨죽이며 보았고 응원했다. 우리의 응원과 침묵이 부담스러웠는지 신혜는 그 시간을 얼른 넘겨버리곤 했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신혜는 운동화를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여느 날처럼 농구 골대에 공을 단진 후, 공을 확인하지 않고 눈과 몸이 먼저 등져버리지 않았다. 신혜는 농구골대를 바라보고 한 참 우리의 숨죽인 응원을 연장시켰다.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무릎을 굽혔다가 펴며 점프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지른 주황색 농구공이 골대 근처도 못 가고 떨어졌다. 신혜와 우리는 그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이 적막했다.
신혜는 뛰는 법이 없는 아이 었다. 무사히 착지했다는 안도 때문인지 그녀의 시도가 격려받아서인지 그녀는 나무 그늘을 향해 뛰었다. 아니 걷는 것일지도 몰랐다. 신발도 신지 않고 양손에 양말과 신발을 들고 빠르게 걸었다. 뜨거운 정오의 태양이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신혜는 춤을 추며 뛰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청량한 바람이 그녀를 감싼 것 같았다. 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해서, 바람에 나부끼는 김의털같이 청량해서 나는 피식피식 웃다가 깊은 감동으로 직진했다. 그날 하루 나는 춤추듯 뛰어간 신혜가 너무 멋있어서 오후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단정하게 앉은 신혜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종례가 끝나고 가방을 싸고 있는데 신혜가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왜 우냐고 아이들은 들썩이는 신혜의 어깨를 토닥였다. 신혜의 전언을 들은 아이 몇이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신혜는 계속 울었고 친구들의 동조를 얻자 몸을 휠 돌려서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는 네가 처음부터 싫었어. 너는 맨날 잘난 눈빛으로 나를 봤잖아. 오늘도 내가 뛰는 것 보며 비웃었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내가 진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돌이켜볼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달아오른 얼굴로 나는 신혜가 내뱉는 온갖 저주의 말들을 들었다. 그날 내가 뭐라고 변명했는지 그 후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는지 아이들과 삐뚤어진 시선을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 닿은 내 태도가 오해를 불렀고 그 오해로 한 사람이 깊은 상처를 받았으며 그 상처의 대가가 저주라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신혜의 춤추는 뒷모습을 떠올렸던 듯하다. 그래서 윤이 떠나고 아이도 잃었을 때 나는 신혜의 소원이 비로소 이루어졌구나, 어차피 너도 나쁜 년이라고 생각했다. 동창들에게 신혜의 소식을 물었을 때 친구들은 말했다.
"몰라, 어디선가 조용히 살고 있겠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신혜의 소식을 아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신혜를 잊어갔다. 많은 설명이 오간 후, 왜 다리 불편했던 애 있잖아라고 굳이 이야기를 꺼내야 아이들은 신혜를 기억해 냈다.
나는 자주 신혜를 기억한다. 내가 그녀에게 짙게 반한 날, 그녀는 나를 짙게 오해하고 미워한 날. 어디서든 신혜가 춤을 추며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길에서 춤추듯 걷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장 깨끗하고 여린 마음을 꺼내어 그렇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