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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05. 2022

남편이 왔다, 집으로 왔다!

항해사 가족의 휴가


만나자마자 곧 이별의 날짜를 확인한다.

"언제까지 우리와 같이 있을 수 있어?"

"잘 몰라.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겠지. 아마 8월 말이나 9월 초?"

"곧 나가겠네."

"아마도."

"그만둬. 내가 복직할게."

남편이 씨익 웃는다. 지친 웃음이다.

남편은 아들 둘을 품 안에 꼬옥 안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이내 코를 골았다.


8월,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습도도 높고 무더웠던 여름의 절정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10월에 오기로 한 날짜보다 더 빨리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속 시끄럽고 답답하고 억울한 이유. 남편은 이번 항차에 드디어 '견습선장'에서 '견습'을 땔 수 있다는 회사의 약속을 거듭 확인하고 승선했었다. 번번이 회사가 승진을 약속했다가 다음 항차에서,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온 시간들이 아까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다음에 승진할 수 있다잖아,라며 말렸다


 한국 입항 5일 전에 '나 이번에 집에 가요.'라는 카톡 하나만 간밤에 달랑 남겨진 것을 아침에 확인하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구나. 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참으라는 말을 할 수 없고, 견디라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다. 나는 그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기다림과 노력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당신의 일이니 당신이 알아서 선택해. 그리고 그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노력하자. 나는 어떤 선택이든 지지해. '라고 카톡을 남겼다. 혹시나 그가 표정이 담기지 않은 문자에 오해를 할까 싶어 조금 더 덧붙였다.

'당신이 그만두어도 괜찮아. 나도 힘들어서 쉬고 다시 충전 중인데 당신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도 아이들도 당신이 어떤 이유로든 빨리 오니까, 건강하게 오니까 그저 감사해.'

남편은 내 문자를 읽고 고맙다고 답했다.


아빠를 만나자마자 8살, 6살 아들 둘은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아빠가 일을 그만 두면 우리 복덩이들 밥은 어떻게 하고 공부는 어떻게 하려고?"

남편의 물음에 첫째가 재빠르게 말했다.

"밥은 조금 덜 먹으면 다이어트도 되고 괜찮아요. 엄마랑 아빠랑 그동안 돈 벌어온다고 고생했으니까 우리가 벌어올게요. 장난감이랑 책이랑 친구들한테 팔면 금방 부자가 될 거예요."

둘째가 심각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내가 너무 밥을 많이 먹지요. 고기는 조금만, 채소는 많이 먹을게요. 우리 마당에 채소는 그냥 자라니까요."

남편은 그들의 어른스러움에 웃는다.

"아빠 너희들 먹여 살릴 능력 있으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돼."

그 말이 떨린다. 눈빛이 비장하다. 나는 뒤돌아서 잠깐 뜨거워진 눈시울을 식힌다. 남편은 휴가 내내 일을 그만둔다느니, 이직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질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너무 일찍 '가난'과 '차별'을 알았지만 그는 자기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간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가 자신의 조카가 남편과 친구인 것을 알고 조카에게 "네가 왜 저런 애랑 놀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남편은 상처받고 비관적으로 살기보다 의연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학비가 들지 않는 학교를 알아봤고 취업이 빨리 되는 곳을 선택했고 일찍 자립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셈 빠른 사람이 되지 않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순수하면서도 독립적인 사람을 일찍이 보지 못하고 자자랐다. 나는 그의 빛을 알아봤다. 부모의 재산과 능력이 하나의 이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는 그의 힘으로 부모가 주신 바른 정신적 유산을 폄하하지 않고 살아냈다. 그런 그가 가진  힘을 사랑했다. 그 자리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을.


나는 코를 드렁드렁 낮게 고는 그 옆에서 가만히 아빠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희망을 일구는 사람. 기본기가 탄탄하고 해맑은 사람.


어쨌거나 선물 같은 그의 휴가가 아이들 방학과 맞아떨어졌고, 그가 다친 곳 없이 하선했다. 우리에게는 경기가 안 좋아도 네 식구 알뜰살뜰 먹고 살 생활비가 있고, 무엇보다 넷이 함께할 시간이 주어졌다. 행복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물이 찔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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