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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08. 2022

남편 없이 명절에 시댁 가야 할까?

"나랑 결혼하면 명절에 혼자 우리 집에 안 와도 돼. 당신은 그냥 친정에서 식구들이랑 보내고, 내가 휴가 때 오면 시댁에 가면 돼. 그래도 돼."


"그건 자기 생각이지. 어머님은 서운해하실지도 몰라."


"우리 부모님들 그런 분들 아니야. 오지 말라고 하시면 정말 안 와도 돼."


나는 신혼 초 혼자 버스를 타고 시댁에 명절을 보내러 갔었다. 남편 없는 시댁에서 어머니랑 아가씨랑 둘러앉아서  음식을 같이 하고 먹었다.

아이를 낳고 갓난쟁이를 안고 혼자서 기저귀 가방을 이고 지고 굳이 김포-속초 운행하는 비행기를 탔었다.   부산에 살 때는 속초까지 한시적 운영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시댁에 갔었다. 프로펠러 소리가 너무 커서 아기에게 좋지 않을까 봐, 기류에 흩날리는 가벼운 비행기가 무서워서 돌 지난 아들을 꼭 안았었다. 아들이 열이 나도 굳이 갔었다.


남편의 휴가는 요래조래 일 년에 두 번 있는 큰 명절을  잘 피해 가고 시댁 어른은 혼자 아들 데리고 오기 힘든데 친정에서 엄마 아빠랑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셨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고, 서운함도 묻어있지 않는 반짝이는 마음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마흔이 되기 전까지 자주 시댁에 남편 없이 아이만 데리고 갔다.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저, 연로하신 시부모님 둘이서 기나긴 명절날, 텔레비전 앞에서 신나는 날 없이 명절을 보내는 것이 조금 마음 쓰여서였다.

그저, 아들도 잘 못 보고 사시는데 손자들이라도 조금 자주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특별할 것 없고 찾아올 가족 없는 집안이 아이들 목소리로 시끌시끌하고 기름 냄새도 좀 나고, 이야기 소리도  넘치고 아이들 웃음도 울음도 담 넘어 들려오게 하고 싶었다.


몸은 피곤해도 나 혼자 뿌듯한 마음에 행복한 명절이었었다.

그런데 아이가 둘이 되고, 마흔이 넘자 나는 명절에 나 혼자 운전해서 아이들 데리고 가는 것을 지레 먼저 그만두었다.


 짐 싸는데 몇 날 며칠. 운전하는데 하루 종일, 가서 아이들 케어하고 삼시세끼 챙기는 것도, 다녀와서 짐 푸는 것도 버거웠다. 속초까지 다녀오면 어김없이 몸살이 나서 몇 주를 앓아누워버렸다.


몸이 많이 힘드니 즐거운 마음보다 서럽고 힘든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내 신경질에 전화기 너머로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고만 했지만 내 피곤은 풀어지질 않았다.


그 마음을 제일 먼저 시어머니가 눈치채셨다.

"괜찮다. 매일 아이들 키운다고 애쓰는데, 네가 워낙 정성으로 애들을 키우니? 다 알아. 안 와도 돼. 아이들이랑 친정부모님이랑 시간 보내고 놀러 오고 싶을 때, 길 안 막힐 때 와. 그래도 돼."


나는 조금 울었다.

살아오면서 삶은 유난히 시어머니에게 박하게 굴었다. 어머니는 뚜렷한 지병 없이 몸이 나날이 나빠지셔서 바깥나들이 못 하신지 오래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싶어도 외식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몸이 되어 버리셨다. 입맛 도는 음식 앞에서 늘 조심하셔야 했고 절제하셔야 했다. 세상은 살만해지고 자식들도 자리 잡아가는데, 맛있는 것 놀고 보고 즐길 것 흔한 세상에서도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삶이 주어졌다.  


나는 휴직을 했는데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눈을 뜨면 언제나 마디마디 몸이 아팠다. 생각만큼 시댁에 자주 가지 못하고 있다. 명절 직전,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가볍고 들뜬 목소리였다. 


"세상에, 너 문어 좋아해서  혹시나 시장에 오랜만에 나갔더니 문어가 있더라.  보내줄 테니 친정 식구들이랑 맛있게 나눠 먹어."

나는 그 비싼 문어를 두 마리나 보내주신 시부모님 마음을 안다. 분명 그분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다리 한 쪽도 사지 않으셨을 거다.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시어머니의 신난 목소리를 전화기 넘어로 듣는다고, 집중헤서 듣는다고 마당에 서있었다. 그 사이 시골모기에게 다섯 방 물렸지만 나는 가만히 시어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서 있었다. 아이들의 소란을 피해, 그 목소리를 잘 기억해 두려고.


저녁에 시어머니가 보내준 문어 다리를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서 초장을 만들어 나랑 아빠랑 엄마랑 앉아서 꼭꼭 씹어 먹었다.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문어를 씹었다. 달다. 씹을수록 마음이 뭉클뭉클 해진다.

마흔셋이 되어 고아가 되지 않고 명절을 부모님과 보내는 것도 행복하고, 며느리도 우리 집 식구고 딸이라면서 늘 챙겨주시고 서운한 일 없도록 웃어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시는 것도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시울이 뜨끈뜨끈해지고 달은 나날이 밝아지는 명절 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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