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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09. 2022

가을바람이 분다, 이별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적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빠의 승선과 하선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네를 처음 탔을 4살 무렵 아들은 하늘에 오를 때마다 자기가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에서 아빠를 찾았다.

"아빠! 나 보여요?"라고.


그네가 중력을 거부하고 가벼운 아이의 몸을 공중으로 붕 띄울 때 아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크게 소리쳤다. 아이의 소리에 놀이터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선후 아빠는 선장이래. 선장은 비행기 모는 사람인가 봐!"

아이들은 앞다투어 그네를 타기 시작했고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첫째 선후처럼 소리를 질렀다.

"선후 아빠! 나도 보여요?"


아빠가 항해 중일 때,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이모와 고모도 모두 아이들을 더 아껴주었다. 그 사랑의 든든함 덕뿐에 어린아이들은 아빠의 빈자리를 걱정하지 않았다. 티 나지 않았다. 아빠와 헤어져도 아이들은 씩씩했다.


 나는 남편이 승선할 때마다 지인들이 레퍼토리처럼 위로처럼 해주는 말들이 종종 거북했다.

"티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아빠 없는 집 아들은 아무래도 힘들 거야. 너희 가족 보면 가슴이 아프다. 너도 안쓰럽고."

위로가 되지 않는 편견 가득한 말들을 들으며 나는 세상에 수많은 항해사의 가족이나 한부모 가족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렇지 않아."

친구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든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보고 싶어 했다. 그땐 마음에 스산함이 스치기도 했다. 오해를 두고 오해를 쌓고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인데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이가 8살이 되자 거짓말처럼 아이는 '이별'을 알았다. 아빠와의 잠시 동안의 이별을 서러워했고 두려워했고 슬퍼했다.  지난봄, 평택항에서 아빠를 배웅했을 때 아이는 우리를 당황시킬 정도로 오열했다. 남편은 아이의 눈물을 달래다가 더 커지는 울음소리를 외면하고 재빠르게 돌아섰다. 아이는 더 서러워져서 차 안에서 더 크게 울었다. 자기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울었는데도 아빠가 출항했다고,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떻게 참냐고 울고 또 울었다. 너무 울어서 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 무렵 아이는 토를 했고 나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새웠다. 토사물이 은 아이 옷을 벗기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때마침 연휴라서 도로 위의 차는 끝도 없이 밀렸고 아이는 끝을 모르고 울었다.


 집으로 와서 베개에 아빠의 얼굴을 그리고 꼭 끌어안았다. 남편이 그려진 베개에 아이의 눈물이 베었다. 밤마다 아이는 아빠 얼굴이 그려진 베개를 안고 안부를 물었다. 6개월 남짓,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남편은 이번 휴가가 끝나고 8월 31일 승선할 때 혼자서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우는 것을 도무지 못 보겠다고, 오르자마자 바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파서 힘들다고 했다. 위험한 일인 만큼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울지 않을 테니 배웅을 가겠다고 했다. 완고하던 남편은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함께 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승선일이 다가오자 매일 물었다.

"몇 밤 남았어요? 몇 밤 자면 아빠가 가는 날이에요?"

그리고 다짐했다.

"울지 않을게요. 근데 참아도 참아도 눈물이 나면 조금은 울어도 돼요?"

둘째는 훌쩍이며 벌써 슬퍼져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아이들을 안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이 일을 좋아해."

"충격. 아빠 나 충격받았어요. 어떻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나랑 헤어지는데?"

"그건 슬프지만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있어. 뭔가를 해냈을 때 느껴지는 희열."

아이는 성취감도, 희열도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다. 게다가 아빠가 이별보다 더 큰 뭔가가 있다고 하는 것이 가늠이 안 되는 듯하다. 남편은 이해시키려고 하고 아이들은 이해가 안 되고 그들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그래도 그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랑 매일 이별하는 아이들도 있어."

내가 옆에서 거든다.

"그래도 그 애들은 저녁이면 아빠를 만나잖아. 매일매일 만나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이번에 아빠랑 이별하면 내년 2월이면 아빠를 만나. 매일매일 아빠를 만날 수는 없지만 휴가 동안은 아빠가 출근도 안 하고 너랑 놀아주는 거야. 매일매일. 그동안 놓친 시간들을 한꺼번에 합쳐서. 이번 여름 재밌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 다양해. 우리처럼 아빠가 출근하면 6개월 헤어져 있다가 퇴근하면 2개월 함께 하는 가족도 있고,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가족도 있고. 어떤 이유로 꽤 긴 이별을 해야 하기도 해. 암튼 굉장히 다양해. 엄마는 우리처럼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밀도 있게 놀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 아빠가 꿈을 위해 출근하는데 우리가 너무 기운 빠지게 울지는 말자."

아이는 조금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긍이 안 된다는 얼굴로 우리를 외면한다.


이별이다. 각자의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또 열심히 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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