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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0. 2022

내 소원은 이것뿐

"내 소원은 이것뿐이에요."

지난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아직 추석 보름달이 뜨려면 이틀이 남았는데. 둘째가 벌떡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더니 창밖을 향해 넙죽 절을 했다.


너무나 경건하고 다소곳하게.

"엄마, 달님이 너무 예뻐서 소원 빌었어요. 아빠 무사히 배 운전하라고."

"그건 엄마가 빌게, 너는 너를 위한 소원을 빌어."

"그게 나를 위한 소원이야. 아빠는 소중해."


아이는 끝내 소원을 바꾸지 않고 다음날도, 추석 당일 날도 아빠의 무사귀환과 가족의 건강을 소원으로 빌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나, 나는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기쁨의 절정에서도 내일을 두려워하고, 결단의 순간에도 끝없이 망설이고 회의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일까? 삶의 구비구비마다 찾아오는 모멸감과 부끄러움, 환희와 환대의 순간에 나는 자주 삶의 의미를 묻곤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본질에 가닿기를 매번 갈구하지만 달님 앞에서 소원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해진다.

'내가 아는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남편이 무사히 항해를 하다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길, 아이들과 부모님과 동생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더 소원을 빌려고 하다가 망설인다. 너무 소원이 많아지면 소원 빨 떨어질까 봐, 달님이 욕심 많다고 흉볼까 봐. 조금 더 욕심내서 가족들도 나도 상처 덜 받고 살아가라는 말을 붙이려다가 그게 또 그만큼 좋은 것일까 생각이 많아져 그냥 '건강과 행복'을 비는 수준에서 정갈하게 마치기로 한다.


'건강과 행복'

 내가 평생 한가위에 어둠 속에서 간절히 빌어온 소원이다. 그것이 내가 다가가고자 하는 삶의 절정인지, 지금만큼만 건강하고 행복한 것에 짙은 감사함을 다시금 복기해보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실 나는 더 많이 구차하고 사소한 것을 갈구하고 있으나 100년 만에 떴다는 밝고 밝은 달 아래, 많은 구름 사이에 은은하면서 고귀한 달빛 아래 서서 그 욕심을 덜고 덜었다.


다른 날보다 붉고 아름다웠던 노을을 바라볼 때부터, 양털같이 하늘을 꽉 매운 구름 아래 달빛이 숨어 있을 때부터 나는 빌었다.

'무엇보다, 그가 무사히 안전히 우리 곁에 오게 해 주세요. 멀리 있다고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게 그의 곁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게 해 주세요. 그들 모두 건강하게 입항하게 해 주세요....'


아이에게 너를 위한 소원을 빌라고 했지만,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이 우리가 가장 갈구하고 바라는 소원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가장 일 순위 소원이라는 것을 여섯 살 아들도 안다.


 산 아래 시골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바라보는  달과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달의 모습이 완벽히 일치한다. 당연히 달은 하나이니.


싱가포르를 지났다는 남편이 보고 있는 하늘에 한국의 구름과 비슷한 구름이 떠 있다. 너무나 비슷한 하늘에 똑같은 달이라 나는 마음이 포근해진다.


오늘도 조금 서럽고, 조금 슬픈 일이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마음을 구차하게 나누어도 구차한 마음이라 그러지 않을, 그래서 곧 마음을 편하게 해줄  남편이 곁에 없어 헛헛했지만 달 덕분에 괜찮아졌다.


아이들은 둥근달 아래에 엎드려 절하고는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달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달님의 안녕도 비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또 금방 괜찮아져서 이런 마음의 아들이라면 달님도 분명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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