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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4. 2022

우리들의 다정한 시간

항해사 가족이 휴가 보내는 법

1. 하고 싶었던 것 다 하자


한 달! 뜻밖의 한 달!

가을에 오기로 한 일정보다 먼저 온 것은 남편의 기대대로 승진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말도 하기 싫다며 회사에 대한 신의가 사라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들떴다. 그가 온다! 그것도 여름에! 오예!! 여름방학에 그가 온다!


나는 정말 물놀이를 혐오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물놀이. 냇가에 몸을 담그고 천천히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어렸을 때 1년에 한 두 명씩 물놀이하다 죽었던 아이들을 떠올랐다. '심청전'에는 물귀신이 살아서 아이들 한 명씩 잡아간다더니 어른들 없이 물놀이하던 초등학생 몇몇은 꼭 물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서 나는 그때 부모의 심정을 가끔 떠올려본다. 내가 어릴 때  부모가 일하러 나가고 우리들은 마구 다녔다. 냇가든, 들이든 산이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때 나처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나 없이 물놀이? 절대 안 된다. 나는 물이 아무리 얕아도 두 눈 부릅뜨고 아이들을 감시한다. 접시물에도 코 박고 죽을 수 있는 것이 물이다.

아이들은 나와 반대로 물을 너무나 좋아해서 일단 들어간다. 깊으면 깊은 대로 좋고 얕으면 얕은 대로 좋아한다. 나는 여름 물놀이가 챙길 것이 많아 버겁고 지켜볼 것이 많아 힘들다. 물놀이가 싫다. 그래도 부득부득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에는 물놀이지 하면서 물놀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걸 내가 안 해도 된다. 눈 부릅뜨고 애들 지키기! 남편이 대신해줄 거니까!

그러니 남편 상황이야 어찌 됐건 (나도 속상하고 잠도 못 잤지만...) 나는 쌍수 들고 "오예"다!

남편은 역시나, 집에 오자마자 깨끗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고 했다. 나와 걸어가다 물만 보면 홀린 사람처럼 물에 들어갔다.

아이들 튜브를 뺏어 자기 먼저 타면서 낄낄낄 웃었고 아이들 스노클링 장비를 뺏어 계곡이든 냇가든 그 큰 덩치를 바닥에 밀착해서(거의 냇가 바닥에 눕다시피 해서) 물고기를 잡아댔다.

한날한시가 소중하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겠다는 남편이, 마흔의 남편이, 애들보다 더 경쾌하고 해맑게 낄낄낄 웃을 때 나는 행복하다.


2. 놀고 싶은 만큼 놀자

남편과 나는 방학 중에 아이들과 적정거리를 둘 궁리를 해댔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반드시. 그리하여 아침에는 내가 모닝커피 사러 나간다는 핑계로 나와서 한 시간 글을 쓰고 커피를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분리수거하러 나간다면서 골프채를 들고 나와 한 두 시간 운동을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에게 낄낄대며 짓궂게 장난을 쳐댔다. 아이들은 우리를 밀치며 왜 놀이를 방해하냐고 호통치더니 슬며시 웃었다. 할 일, 하고 싶은 것을 한두 시간 하고 아이들과 실컷 놀 때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뭔가 우리들만의 시간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남편은 '공부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뭐 이렇게 중얼거리다가도 '에이 모르겠다' 하면서 놀고 있다. 아이들처럼 놀이가 숙제인 것처럼, 자기 밥줄인 것처럼 논다. 나도 논다. 놀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을 보는 것도, 요리를 셋이 하는 것도, 우리가 좋아했던 추억의 영화를 아이들과 보는 것도 다 놀이다!



3. 휴가 끝나기 직전에는 어김없이 부부싸움

이건 법칙이다. 남편도 나도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나는 남편이 긴 항해로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우리들과 떨어져 외로웠을 날들을 애틋해한다. 남편은 내가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꿈을 잃지 않고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아이들을 알뜰살뜰 돌보는 것을 애틋해한다. 서로 퉁퉁 살찌고 피곤에 찌든 몸을 보며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나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구나 하면서 서로 뭐라 하지 않았는데 불쌍히 여긴다. 오래간만에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우리 둘 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애쓰며 살았구나 싶어 키득거린다. 우리 언제 이렇게 늙었냐, 하면서. 27살에 나를 만났던 남편은 이제 마흔이다. 흰머리가 늘고 뱃살도 늘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만 늙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서로의 티끌이나 짜증, 신경증을 어느 정도는 참아주는데 휴가가 3달이든, 1달이든 어김없이 일주일 남짓 남기고는 싸우게 된다. 참아왔던 불만은 기본값이고, 남편은 곧 출항한다는 예민함, 나는  다시 외로워질 거라는 불안함과 우울이 극에 달한 시기라 둘 다 참지 않는다. 참지 않고 득달같이 싸운다. 소리도 막 지르고 말도 안 하고 쳐다도 안 본다.


처음에는 내가 갑이었는데 요즘은 남편이 갑이라서 내가 먼저 화해 요청한다. 남편이 곧 나가는데, 그 깊은 불안과 초조와 부담감을 감당하는 그를 두고 내가 자존심 세워 뭣하겠는가 하는 맘이 있다.(남편이 나의 깊은 뜻을 좀 눈치채길! 내가 잘못해서 굽히는 게 아니라고!)


화해는 쉽다. "야, 남편! 야! 이럴 거야? 나이도 어린 게?" 이렇게 한 마디 하면서 웃으면 된다. 그럼 그도 "누나, 나이 많아서 참 좋겠다. 나이 많아서 좋겠소."라면서 웃는다. (그래 봤자 겨우 내가 3살 연상이다. 나이 따지는 것에 우리의 추억이 있기에 나는 곧잘 불리할 때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남편은 이 신호가 슬며시 내가 꼬리 내리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받아준다.)


사실 나는 왜 싸웠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남편은 꼼꼼해서 왜 싸웠지?라는 나의 물음에 침착하게 원인제공, 여러 상황, 싸움의 발단과 나의 행동,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차근차근 말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서서히 열이 오른다.

"그냥 나도 몰라, 하라고. 제발! 내 잘못, 네 잘못 따지지 말고."

이 호통에 남편은 황급히 입을 다문다. 어휴.



4. 이번 휴가는 더더욱 밀도 있었던 것 같아.


어쨌거나 매번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나의 계획과 실천력, 당신을 향한 애정 덕이라고 나는 스스로 자화자찬한다.

남편은 순순한 얼굴과 다정한 마음으로, 그래 맞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찐한 분위기를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애들 빨리 재우자."

"맨날 빨리 재우자고 해놓고 같이 자면서."

"우리 언제 같이 자보지?"

"몰라. 기대도 안 해."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오늘은 성공하겠다고 둘째를 낑낑거리며 업어 재웠다. 26킬로그램의 둘째를!

첫째가 남았다. 첫째가 잠을 시루며 동화책 읽어달라, 배가 고프다, 엎치락뒤치락하니까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에휴, 좀 자라, 제발 자라. 그래도 첫째는 안 자고 11시가 넘고, 12시가 가까이 되어 갔다. 2시간 가까이 기다리면서 나도 지치고 남편은 아예 잠들었다. 첫째가 나를 보며 씩 웃는다.

"나 엄마랑 잘래."


그래, 우리의 밀도 있었던 휴가가 이렇게 끝났다.

아쉬움 없을 줄 알았는데 추억이 쌓여서 아쉽네. 나는 머릿속으로 내년 2월 즈음엔 또 무엇을 하고 놀까 심심하고 외로울 때마다 생각해놓는다. 히히히, 낄낄낄. 그래! 2월에는 이걸 해야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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