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 그러나 하기 싫으나 할 수밖에 없는 일 앞에서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일을 하지 못하면 다음에 이 일이 더 몸집을 부풀려 나를 찾아올 것임을 안다. 번번이 피하고 넘겨도 중요한 순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숙제 같은 일들이 있다.
또 다른 스트레스도 있다. 가난하고 완고하고 기이한 작가가 있다. 그 사람은 자기만 보는 책을 쓴다고, 자기가 만든 책을 결국 자기가 돈 주고 사보는 현실을 개탄하는 글을 썼다. 나도 그런 무명의 작가 중 한 명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그 사람의 책을 한가득 샀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자기만 아는 언어로 쓰인 그 책에서, 숨길 수 없는 나만 옳다는 고집과 아집이 읽혀 책을 덮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곧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책을 비추천하는 글을 올리는 피드를 나쁜 책이라고 매도하는 피드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자세에 화가 자꾸만 났다. 세상에 수만 가지 색의 생각과 글이 있을 것인데 거기에 자기가 옳고 그름, 좋은 책, 나쁜 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는 온갖 인터넷 서점에 올라오는 신간들에 아주 낮은 평점을 주고 혹평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낸 책에는 만점을 스스로 주고 추천 책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며 긴 글을 써댔다.
'나만 옳음'을, '세상은 온통 불합리한다'는 메시지를 견딜 수 없어 그의 sns를 차단하고 책을 창고에 넣었다. 이런 나를 보더니 동생이 말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책에 호기심은 있고, 책을 읽기도 하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책에 갇혀서, 자기가 너무 옳아서 갇힌 사람이야. 내가 저렇게 될까 봐, 저런 자세하 옮을 까 봐 겁나서 나는 피하는 거야. 싫거든."
"언니는 그 정도로 책을 읽지도 않잖아."
그녀가 웃었다. 그렇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야. 이제 싫은 것은 참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러 색이 어우러지다 어둠이 내려앉는 고요한 시간을 가만히 느꼈다. 그 작가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시골살이는 기만이다. 인생에 징징대지 마라. 겨우 그정도 깊이가 사랑인가?'
나는 고개를 흔들며 소리 내어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삶의 무게가 있는 것이다."
남편이 그때쯤 사진을 보내왔다.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며 바다의 물고기 떼, 거북이, 일출 사진이었다. 자신은 지금 오만 어딘가의 바닷가라며.
남편은 이제 작업을 끝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단독 선장으로서의 임부를 시작할 거라고 했다. 너무 부담되지만 좋은 마음으로 배를 타면 무탈할거라는 선배의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다.
"좋은 마음..."
부정과 부담에 매몰되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자. 각자의 무게를 받아들여서 해야햔 일을 해내자. 외면하지 말고.그는 그의 삶의 무게를 견딜 것이고, 나는 내 삶의 무게를 견딜 것이다.
그가 보낸 소박한 선물 덕이다. 그에게 미주알고주알 사소하고 치사하고 불편한 나의 마음을 떠들지 못했지만 이해받고 위로 받는다.
그가 있는 풍경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힘을 얻는다.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길을 헤매는 사람이고, 머뭇거리며 다른 사람의 선택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주춤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마다 읽고 쓰는 시간을 선택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주어진 삶의 무게의 경중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쓸 것이다. 책에, 감정에, 이성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어떤 삶이지 모르나) 평균대 위를 유유희 걷는 마음으로 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