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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8. 2022

어쩌자고 시큰둥한 마음

당신과 나의 사십대 쪽지

오늘의 나는,

방송을 하나 찍었어. 첫째가 이제껏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서 찍고 싶어 했고, 일흔 넘은 아빠도 내심 찍고 싶어 하시길래. 망설이고 망설이다 찍는다고 했어.  


책을 내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를 찍어서 조금이라도 나를 알려야 했고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도 있있었어.정말 최선을 다해 쓴 글이 어떻게라도, 조금 이라도 알려져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내키지 않아서 출연 제의 문자에 일주일 동안 답을 못했어.


마음이 자꾸 시큰둥해졌어.


오늘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려서, 지쳤어.  집에서 도망 나오다시피 나와 카페로 왔어. 나오면서 깨달았어. 아이들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나는 열받은 거란 걸. 그래 어쩌면 나는 멀었어. 좀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휴직도 하고 시골 육아를 하면서도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 절망이야.


카페의 한 테이블에는 두툼한 책을 여러 권 쌓아둔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열두 명의 청년들이 자기소개를 하기도 하고, 농담을 서로 건네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고 있어. 나는 자꾸 소란 속에서 두꺼운 책을 뒤적이며 고군분투 중인 학생에게 눈이 가. 그는 무엇을 위해 무슨 공부를 하고 있을까.

갑자기 부러움이 일어.  그는 이 소란 중에서도 집중하고 있어, 어떤 공부에.


나는 요즘 시큰둥한 마음 때문에 사실 강의도, 북토크도 미루고 있어.

기회가 어렵게 왔는데 이래도 되나 자책하면서... 잘해낼 용기를 자꾸 잃어.

마음이 뭔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고 피곤해져.


이런 마음 때문에 오늘도 조금 벅차서 아이들의 투정을 너그러이 받아주지 못했어.

자꾸만 내 마음이 시큰둥해져. 해서 뭐하나, 이렇게 애쓰면 뭐하나 싶어져. 좋아했던 마음, 그래서 뜨겁게 달아올라서 밤을 잊고 글을 썼던 마음이 어디로 간 걸까.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들이. 오랜만에 찾은 마음인데... 오늘 푹 자고 나면, 다시 글을 쓰고 뜨뜻하게 덥혀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자꾸 마음이 식으려 할 때마다 두려워.

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숨 쉬고 사는 것도 귀찮고, 모든 빛나는 것들도 무심하게 바라보게 될까 봐.

아무런 자극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캄캄한 마음.

그때의 내가 나는 정말 싫었어.


남편의 답장:


당신의 글을 보니 부정적인 마음 안 먹었으면 좋겠네요. 그것이 쉽지 않지요. 잠시만 방심해도 마음은 금방 지치고 어두워지니까요. 힘듦을 알지만 나는 당신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의 어둠은 깨끗한 물에 떨어진 잉크와 같아서 순식간에 번지기도 하니까, 사랑하는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골 생활하며 작고 보잘것없고 지나치기 쉬울 수 있는 것들은 당신은 그러지 않고 있지요. 작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꾸준히 글을 쓰는 자기 모습이  좋아 보여요. 자꾸 응원하게 되는 것은 당신의 그런 모습이 빛나니까,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힘이 나니까.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면 푹 쉬어요.


오늘은 몸과 마음이 지친 거 같으니 특히나 쉼이 필요해 보이네요. 푹 쉬어요 , 부디.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요. 고생 많았어요.


나의 오늘은...

 그토록 바라던 견습기간을 하게 됐는데 내 부족한 부분을 다시 자각하게 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공부도 하고.

 사실 수석항해사 시절보다 몸은 편해져서 살짝 게을러 지기도 했어요.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고 첫 장이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었어요. 사실 매일매일 이런 걱정을 하고 있어요. 선장이  되면 많은 부담감과 외로움이 있을거라 생각. 내가 과연 30명의 승무원들과 선박의 안전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

마냥 앞으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을 때 책을 통해 극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좋은 책을 읽어요. 요즘 좋은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면 그게 내 기록이 되고 내일이 되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냥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좋은 책을 만나 다시금 열정을 살려보고 있어요. 열심히 불씨를 살려볼게요.)


 일요일이지만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에 독서도 하고 자기 말처럼 오늘을 있는 힘껏 살아가려고 노력했어요.  중간 중간 자기의 인스타를 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잠시 위안을 삼고요.


나 없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오늘처럼 가끔 힘들때면 나에게 알려줘요.

멀리 있지만 이렇게 편지라도 위로를 해주고 싶네요.

우리 이전에도 말했듯이 서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요. 오늘을 있는 힘껏 살아요.

많이 보고 싶어요. 사랑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오늘 한국으로 출항한 지 이틀되었습니다. 오만에서 한국까지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있네요. 무사히 당신과 아이들이 있는 나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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