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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an 20. 2017

그녀와 안녕.

마지막이 주는 먹먹함, 다시는 못 본다는...절망감.

대한에 대설.

하얀 눈발이 거세게 허공을 때린다. 사선으로, 사정없이.


오늘은 그녀가 우리를 떠난 날.


그녀는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거센 눈발처럼 우리 마음을 때리면서.






 그녀를 보면 늘 깡마른, 날카로운 겨울 나무가 떠올랐다. 어디가 예뻐서 그녀는 그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늘 궁금했다. 전혀 살갑지도, 아주 예쁘지도 않은 그녀에게 그는 첫 눈에 반해 도서관에서 잠시 시간을 내달라며 고백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곧 그는 단번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최연소 합격자가 되었고 그녀는 검사가 된 그와 결혼했다. 그의 모친이 결사반대했지만 그는 좋은 혼처자리 곁눈질도 안하고 지독하게 가난한 그녀와 결혼을 강행했다고 한다. 한 남자의 굳은 사랑을 받는 그녀가, 늘 당당한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와 그는 어딜가든 손을 잡고 다녔으며 우리가 시선을 돌리면 가볍게 서로 안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굳은 느티나무들처럼.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소래포구의 한 새우구이집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평일 대낮에 그는 그녀가 아닌 낯선 여자와 함께 였다. 눈치없는 나는 반사석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냈다. 바로 옆테이블이라 모른 척 하기도, 아는 척 하기도 애매한 찰나 무의식적으로 눈이 동그래진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멋적게 인사를 받아주고는,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두 번째 마주쳤을 땐 나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 앞에서 참 젊어 보였고 편안해 보였다.




 신혼을 보낸 그들은 그리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들리는 얘기는 부풀려졌을지도, 소문을 내는 입들의 시각이 덧붙여졌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무엇이든 그녀가 무척 힘들어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개천에서 용난 집안의 아들, 그에게 요구되는 끊임없는 책임과 요구. 며느리로서 끝없이 참고 퍼주고 날라도 만족이 없었던 끊을 수 없는 인연. 그렇게 둘 사이에 금이 가고 멀어지고 각자 다른 것에서 위로 받길 원하고.

 그랬다고 한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헌신했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자식을 위해 조금만 더 참자며 그를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너무나 훌륭하게 커갔고 마음을 못잡던 남편도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시댁과의 마찰은 끝이 없었고 이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평소 앓던 위궤양이 위암으로, 그리고 위암  말기에서 온 몸으로 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에게 병을 알리며 던진 말은,


너무 미워 하지 말아라. .

너무나 미운 사람도.

그런 미움은 결국엔 자신을 죽이더라.

그러니

용서해라.

그런 미운 사람 있다면...  마음에 담고 살지 말아라.


그 말이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십여년 전 오늘처럼 이렇게 궂은날, 그녀는 임용고시 치러 올라온 나에게 방 한 칸을 내어 주었었다. 시험이 끝나고 두 눈이 빨간 나를 보고, 진짜 다 쏟아내고 나왔구나 라고 말했었다. 모진 말도, 상처주는 말도 농담처럼 던졌던 그녀였지만 밉지 않은 그녀였다. 나이가 들수록 그녀가 꽤 멋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걸을 수 있다며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랬다던데 그 말을 주위 모두가 믿지 못할 만큼 그녀는 야위어가고 있었단다.


 슬픔은...

시간이 가면서 어느날 불시에 쏟아진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먹먹함이 싫다.


그녀여, 안녕.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옆에 부모들 자신의 무덤을 볼 때

곧 따라가 만나게 될 사람을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깨닫는다.


쫓겨난 왕들이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 옆에

묻혀 있는 것을 볼 때

또 온갖 논리와 주장으로 세상을 갈라놓던

학자와 논객들이 나란히 묻힌 것을 볼 때

인간의 하잘것없는 다툼, 싸움, 논쟁에 대해

나는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일부, 조지프 애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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