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치마

by 다다리딩

외할머니, 하면 따뜻하고 거친 손이 떠오른다던 친구가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의 엄마.


그런데 나에게 외할머니는 만나면 데면데면하고 자주 봬도 어색한, 이를테면 내가 떠올리는 그녀는 만날 때마다 손톱에 예쁜 색깔의 매니큐어가 바뀌며 칠해져 있는 세련된 할머니일 뿐이다.


자주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은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학원을 다니느라 전철 탈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외할머니의 집에 잠시 기거하면서 부터였다. 그녀는 그 무렵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졸혼을 선언하고 독립해 나와 혼자 살고 있었다. 근 오 년만에 만난 그녀의 손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다. 언제나 알 큰 보석 반지와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큰 아들을 잃은 몇 해 전부터 더이상 화려한 게 싫다고 하셨다. 고시원에 보내달라고 떼 쓰는 내 등짝을 때리며 엄마는 외할머니집에서 학원을 다니라고 했다. 그리고 고시원비보다 훨씬 웃도는 돈을 생활비조로 외할머니께 보내드렸다. 아마 우리 식구들 눈치 안보고 이제껏 소홀했을 엄마에게 맘껏 용돈 챙겨드리고 싶은 딸의 맘 때문인 것 같아 외할머니와의 불편한 동거를 몇 달간 하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더욱 외할머니가 어색하고 미워졌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엄마를 불러 갑자기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그동안 카드 빚이 있는데 빚을 지고 죽을 수 없으니 대신 해결해 달라고 했다. 외할머니의 작은 방엔 쓰지도 않는 홈쇼핑 용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준비도 없이 늘그막에 사회에 나온 외할머니는 돈을 벌게 해준다던가, 공짜라는 말에 쉽게 넘어가 다단계에 빠지기도 하고 미끼 상품을 받고 이상한 약을 잔뜩 사오고 싸게 샀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아들은 어려워해 외삼촌들이 찾아오는 날에는 나에게 함부로 대하며 이것저것 시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싫어 어쩌면 그해 바로 합격을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있으면 자꾸 힘이 빠지고 뭔가 마음이 아프고 슬퍼지는, 나도 이층 옥탑방에서 삐뚤어진 시선으로 사회를 보게 될 것 같은... 우울함이 싫어서. 그 힘듦이 묻을까 얼른 나와 버리고 싶었다.


엄마가 갑자기 상경했다. 외할머니가 일흔 다섯에 치마가 입고 싶다고 하셔서. 이번에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치마가 꼭 입고 싶다고 하셨다. 다리에 하지 정맥류가 있어 치마를 못 입어 본지 너무 오래됐다고. 7월 무더운 여름날 의사의 만류에도 외할머닌 수술을 했고, 붕대를 칭칭 감은 다리로 생활이 불편하다고 내 자취방에 와 계셨다. 퇴근 후 나는 외할머니의 끼니를 챙기러 꼬박꼬박 해지기 전 귀가해야만 했다. 외할머니는 내 가방이며 신발을 보며 이것 참 예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져 그 말이 스쳐간 신발을 신어도, 가방을 들어도 편하지 않아 결국 그녀에게 넘기게 되곤 했다. 그래도 그녀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은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엄마 때문이었다.


그후로 나는 외할머니가 어떤 치마를 입고 다니실까 상상해봤다. 그러나 그녀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예전처럼 치마가 맵시가 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빌라를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라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더니 외할머니가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이사가고 싶어한다며 그녀의 돈에 내가 대출을 받아 내 명의로 하고 외할머니가 사시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았다. 왜 엄마는 외할머니의 문제라면 이렇게 변하는 걸까. 나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엄마는 본인 명의의 집을 사서 외할머니를 사시게 했다. 결국 같이 살기를 거부한 외삼촌 대신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는 엄마가 자신을 시골로 데려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자주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늘 원망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그 집에서 어느 날 쓰러졌다. 외갓집 식구들은 다들 엄마를 원망했다. 시골로 데려가 빠른 치료를 못 받게 했다며. 그 후 외할머니는 치매가 와서 엄마에게 서운한 점을 다른 자식들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결국 엄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했던 엄마를 쉽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 장롱 구석에서 먼지가 잔뜩 붙은 벨벳 롱치마를 발견했다. 나는 아마도 외할머니를 다시 만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원하는 '엄마의 사랑'을 주지 못했던 그녀가 미워서.


하늘을 향해 벨벳 치마를 탁 털자 햇살 속에 먼지들이 어지러이, 마구잡이로 흩어지다 다시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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