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by 다다리딩


우리는 왜 그토록 이브에, 크리스마스에 설레었던가.


반짝거리는 트리 하나 변변찮은 시골 동네.

불빛이 전무해 깜깜한 밤이 내려 앉으면 아쉽고 아쉬워 허무해지던 어린 시절.


고요는 쓸쓸함과 맞닿아 있었다.


서울 영등포 역사의 화려한 불빛을 보고 온 열살의

나는 나중에 크면 밤에도 반짝거리는 불빛이 있는 곳에서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었다. 반짝이는 불빛 아래 있으면 작은 심장을 후려치던 허무함은 조각나 흩어질 것 같았다.


나의 사회 생활은 빛나게 시작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조그만 자부심이 자라났던 . 반짝반짝한 나.


그러나 15년만에 나는 사람없는 한적함이 못내 그리운 삼십되가 되었다. 화려함 없는 크리스마스가 더 편안한 지금이 좋다. 그 흔한 캐럴이 거리에 흩날리지도 않는 고향 골목길을 걸으며 크리스마스에 어울리지 않는 '먼지가 되어'를 흥얼거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핸드폰은 여전히 별다른 알림이 없었고 별다른 약속도 없었지만, 눈보다 비가 오는 거리에서 쓸쓸함보다 차분함이 느껴져 더 좋았다.


그래, 모두가 화려하고 바쁘고 약속이 있는 크리스마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지금이 편안해.

남편과 저녁 7시의 시내를 드라이브하며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무단횡단을, 뒤따라오던 동생의 모방 행동을, 끼익 날카롭고 둔탁한 우유 배달 트럭의 급브레이크 소리를, 도로 위의 쓰러진 동생을 보고도 아무런 현실 감각이 없었던 그 시간을, 엄마가 세게 후려치던 등짝에 억울함과 서운함만 도사렸던 철 없음을, 동생은 그 시절 입원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나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이쁘다 해줬던 유일한 시간이었기에 퇴원이 싫었다고 한 동생에게 무척 서운했음을.

그는 나의 조잘거림을 들어주는 일을 가장 잘하는 남자다.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카드와 커피 한잔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사실 필요한 것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 '충분하다'의 의미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에게 필요한 것보다 그냥 내가 싶었던 것을 주었다. 그가 좋아하지만 여유가 없어 자주 놓치는 일상의 음악, 중고 서점에서 고른 경제 서적, 몰래 지갑에 넣어 둔 오만원. 그는 그것들을 받을 때마다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나에게 선물이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주었다.


추억이 담긴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손글씨.

별 내용도 없는 카드를 읽다 울컥해져 눈물이 났다.

-당신이 힘든 내색없이 사랑스런 모습으로 아이들을 키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뭔가를 하고 싶은 맘도 생기지 않고 아름다운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지친 나는, 그의 카드를 읽다 뭔가 풀리는 기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메마른 얼굴,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물이 차고 넘쳤다.


오래된 추억이 담긴 공간에서 툭툭 던지는 말들은 서로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힘들지, 그래도 아이들이 잘 커서 너무 행복해, 아이 낳고 지금까지 매번 두세 시간 끊어자니 너무 힘들어. 뭔가 방전됐지만 나날이 희망적이라 견딜 수 있어...


어젯밤 세 시간밖에 못 잔 남편이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자기 만나 되게 행복하다, 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 같아..


별다른 게 없는 크리스마스.

설렘이 없는 크리스마스.

그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평범한 일상을 반짝반짝 닦는 우리의 크리스마스.

세월을 견뎌낸 거리를 걸으며 균열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메리크리스마스..앤 해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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