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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08. 2023

겨울이면 생각나는 보늬밤

문장소감 365 #day7

밤이 겨울을 초대한다.
추워야 완성되는 요리가 있다.
추위가 조미료다.

(영화 리틀포레스트 중에서)




어렸을 때 살던 집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었다. 겨울엔 더욱.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연료비가 많이 들뿐, 방안 공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동생과 입김을 불며, 누구 입김이 더 길게, 오래 뿜어나오는가 내기를 하던 날도 있었다. 호오, 호오.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동생은 호흡에 있었서는 한 뼘 짧았다. 부실한 녀석, 나의 승!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 '딱밤' 때리기. 따악! 아얏! 나는 딱밤을 잘 때렸다. 아프다고 눈 흘기던 동생이 이내 히죽 웃는다. 동생과 나는 자주 투덕거리고 이내 낄낄거렸다.


나이가 들수록 겨울이 싫어졌다. 눈이 오면 질척해져 미끄러운 도로 위에서 불안하게 비틀거리는 것도, 여름 옷보다 두세 배는 비싼 겨울 옷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난방비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편함에 불평이 입턱을 자주 넘었다. 무엇보다 수족냉증이 심한 나는 손발이 차고 얼어, 잘못 힘이 가해지면 '쩡'하고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아서, 겨울엔 입꼬리가 쳐졌다.


나는 입으로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손발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들을 쌓고 쌓았다. 세상의 기술도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길을 열어주었고 나의 생활도, 우리 가족의 생활도 좀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부모님은 고향집터 낡은 건물을 허물어 새 집을 지었고, 나는 신축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했다. 직장생활도 꾸준히, 내 생활을 십수년 째 잘 책임지고 가꾸고 있다.


어느새 혹독한 겨울을 잊었다.

지난 겨울, 넷플릭스로 원작 리틀포레스트를 보았다. 웃풍없는 집 거실에서, 수족냉증은 여전했지만 공기가 훈훈했다. 동생에게 먹이던 '딱밤'을 떠올리며 영화 속 보늬밤을  따라 만들어 보았다. 완성하기까지 1 박 2일이 걸렸다. 맛있었지만 그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얻은 결과물은 '개~'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적고 수고스러웠다.

지방 도시에 사는 동생에게 보늬밤을 보내지는 못했고, 사진과 함께 나딘 스테어 시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속 싯구를 문자로 보냈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다면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헤엄치리라.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그리고 콩은 더 조금 먹으리라.


동생이여, 딱밤만 먹였던 것이 미안하여 언니가 보늬밤을 만들어보았다. 니가 서울로 올라오던, 언니가 너 사는 곳으로 내려가던,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너에게 딱밤 대신 보늬밤을 먹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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