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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Mar 25. 2023

갭이어는 어떨까

글쓰는 직장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생각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호흡이 차분해지는 곳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퇴사하면 여기 자주 와야겠다. 평일 낮에. 내 발길이 닿은 날, 아무 때나.

청운동 꼭대기, 인왕산 중턱에 자리 한 한옥 도서관, 청운동 도서관은 딱 그런 곳이었다. 하릴없이 와도 마음이 뿌듯한 곳. '나 이제 백수예요.'라고 속삭여도 부끄럽지 않을 곳.


요즘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퇴사'라 하지 않고 '갭이어(휴지기)'라 부르는 사람이 늘었다. 100세 시대, 정년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갭이어'는 일시중단 상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와 정당함이 담겨 있는 듯도 하다. 왠지, '退(물러날 퇴)'를 쓰는 '퇴사'는 경력이 끝장난 듯한 느낌을 준다. 한 회사에서 십 년 이상  다닌 후유증 아닌 후유증인 걸까. 대안 없이 퇴사하는 것이 마냥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 몸이 삶아져 버린 '냄비 속 개구리'가 된 느낌이다. 


물론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며 회사밖 생활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쌓아, 꾸준히 성취와 성장을 더해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이모작의 기회를 엿보는 능력자들도 아주 가끔 본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회사일에 매몰되어, 마냥 스스로를 방치하는 사람보다 훨씬 생기 있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듯도 하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반기, 분기, 일 년, 삼 년, 오 년, 자기만의 로드맵을 착착착 쌓아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자주 꺾이는 자신의 마음과 싸워 꾸준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뭐가 돼도 되더라.


꼭 뭐가 되어야 하냐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살면 된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의미 있게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작정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알람 없이 일어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잠들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지금의 나에게는 일이 끊기고 수입이 중단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크지만, 사실 제일 두려운 것은 '변화'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제일 쉽고 편하다는 생각. 그냥 조금 정체되었더라도, 월급이 나오니까 회사가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비비자.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곤 한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렇게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을 때, 상처받지 않을 자신 있어.


 상처받거나, 후회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만, 나는 한 번쯤 관성의 힘을 이겨보고 싶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일 줄기'를 끊고, 왼쪽으로 돌아가 보는 것. 하던 대로 하려는, 다니던 대로 다니려는 관성을 스스로 끊어내 보고 싶은 기세가 치고 올라 온다. 지금 누가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직할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거 '결기'가 아니라 '치기'나 '똘기' 아냐. 

어떤 날은 결기, 어떤 날은 치기. 주거니 받거니 갈등하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튤립이 있었다. 싹을 틔우다 만. 겨울잠을 깨고 발아가 되었던 튤립이었다. 엄지손가락만큼 새싹이 올라오다가 멈춰버리더니 수분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성장하기를 멈추는 듯했다. '아무래도 도태된 구근인가 보다' 잠깐 화분을 살펴보다 실수로 툭 쳤고, 흙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싹을 틔우고도 말라가던 구근이 공기 중에 노출되고 말았다. 아직 싹이 완전히 말라죽은 것은 아니기에 다시 화분에 심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물을 주었다. 떠나는 길, 물이라도 한 번 시원하게 마시라고.


그리고 무심하게 며칠이 흘러갔다. 화분이 있는 베란다 쪽은 완전히 잊고 지내는 바쁜 나날이었다. 주말이 되어서야 화분을 이제는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엇!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나왔다. 엄지손가락만 한 새싹 옆으로 같은 크기가 싹이 하나 더 돋았고, 둘 다 통통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무슨 일이야? 죽었던 게 아니야? 어떤 튤립은 휴지기 없이 꽃대까지 일사불란하게 피워 올렸지만, 이 튤립은 달랐다. 한동안 멈추었고, 시들었고, 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시 살았다.


과장을 조금 섞어, 성장을 멈추고 죽어가던 튤립의 소생은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다.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일중단'이 쩌면 싱싱한 소생과 새로운 기회를 줄 거라고. 다소 비약일 수도 있다.


대책 없이 낙관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오래 일했잖아. 언제부터 일했는지 떠올려 봐. 대학교 4학년 시절 임시직까지 포함하면, 거의 20년 이상이야. 물론 중간중간, '갭이어'라 부를만한 시간이 한 두어 차례 있었다. 그래도 최근 십삼 년 동안 여름휴가와 연월차 며칠 쉰 것을 제외하면, 쉼 없이, 꾸준히 근하고, 퇴근했다.

 

휴지기가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낙관하는 것이 환상이라면, 휴지기가 일의 종결로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불안도 허구이긴 마찬가지다.


휴지기는 단순히 쉬는 것만은 아니다. 평일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바꾸는 것이고, 시간을 채웠던 활동과 결과물들을 바뀌는 것이다. 즉 오른쪽 흐르는 물줄기를 왼쪽으로 돌려보는 것이다. 다른 들판을 지나고, 다른 돌과 나무, 물고기들을 스쳐 지나가는 일이다.


산다는 건, 양날의 검, 시소의 이쪽저쪽, 할까 말까줄다리기의 연속인 것만 같다. 팽팽하게 맞서던 양진영이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때도 있지만, 일순간 어느 쪽으로 힘이 기울어지는 때도 있다. 조금은 그 힘을 이쪽으로, 큰 변화를 주는 쪽으로 팟! 하고 당겨보고 싶다.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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