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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18. 2022

꽁한 마음

가젤 일상 로그


친한 동생과 언쟁을 벌였다.

사소한 일로. 둘 사이의 일이라면 언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라도 될텐데, 한 다리 건너 일로 서로 생각이 달랐고, 둘 다 자기 입장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다 감정까지 상해 버렸다. 논쟁 자체도 달갑지 않지만 아무런 영양가 없는 논쟁을 벌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지친다.

“야 너 그래도 언니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소위 꼰대 마인드가 올라왔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 잡았다. 오랜 사회생활의 내공이 힘이 되어 주었다. 지금 이 말을 내 뱉고 나면, 나중에 피곤해진다. 니 자신이 더 괴로울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서로 자기 주장을 펼치느라 평소 대화톤과는 다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상대의 이름을 수차례 부르며 내 얘기를 들어봐 라고 말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서로 들으라고만 하지, 들으려고는 않는다. 다행히 그 날은 브레이크가 잘 잡혀, 문득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 한 쪽이 KO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는 했는데 헤어지고 나니 마음의 앙금이 남아 뒤끝이 올라 온다.



내가 얘랑 또 어울리면 인간이 아니다.
옹졸한 마음이 스멀스멀 차 오른다. 옹졸한 줄 알지만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아니, 걔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바락바락 우기지만 않았어도, 눈을 그렇게 뜨지만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분위기가 이상해지지 않았을 거 아냐.

여전히 상대에 대해 꽁한 마음이 들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올라오면 그 때부터가 적절한 성찰의 타이밍이다. 논쟁이 벌어진 장소나, 혼자 있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된다.


마음이 꽁해지면 혼자 걷는다
걸으면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혈중산소농도가 높아져 두뇌 회전이 빨라진다.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신체 활성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지는 느낌도 난다. 부정적인 생각이 물러가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긍정적으로 보는 힘이 생긴다. 동생과 벌인 언쟁 상황을 다시 각색해 본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동생의 에티튜드가 생각나며 바르르 한다. 그런데 일단 걷고 나면, ‘가만있자, 내가 그렇게 까지 분개할 일인가? 걔도 걔 생각이 있겠지. 아무렴 다 큰 성인인데,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개의 견해가 있다잖아. 내가 너무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제서야 상황이 좀 객관화 되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좀 더 경쾌해 진다. 시원한 겨울 공기가 마스크를 지나 기도를 타고 폐 속 깊이 신선한 생각을 불어 넣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걔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야. 그 부분은 나도 공감이 가. 걔도 답답하니까 목소리가 높아졌겠지. 그리고 토론이 격해지면 목소리도 높아지고 그러는 거지. 나는 뭐 차분했나?’ 스스로의 에티튜드도 평가를 해 본다. 그렇게 잘한 건 없다. ‘나도 잘 한 건 없구만.’


바깥 공기가 상큼하다.

얼음이 살짝 언 도심 하천 산책로를 걸으며 주변 풍경도 두루두루 살핀다. 겨울 철새들이 짝을 이뤄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한 놈이 수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앞서 유영하면, 다른 하나가 날개짓을 서두르며 따른다. ‘잘 어울리네’ 나이가 들수록 만나서 속생각을 나눌 지인들은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낀다. 한 줌 뿐인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이렇게 꼬장꼬장하게 작은 일에도 삐지면 만날 친구는 점점 줄어들꺼야.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하긴 이게 어디 잘잘못의 문제인가’ 다름의 문제지.’ 그리고 생각은 사실 언제나 다를 수 있고, 그것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각자가 다른 생각을 자꾸 어느 쪽에 일방적으로 맞추려고 할 때 부작용으로 언쟁과 감정이 상해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중용의 묘를 발휘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한 쪽으로 의견을 모아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사이의 은 그런 국가 대통합, 통치의 일은 또 아니었다.

꽁했던 마음이 좀 풀린다. 이깐 일로 다시 안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내가 좀 옹졸하구나’

이렇게, 대략 천 보를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게 느껴진다

꽁했지만, 너무 오래 꽁하지 않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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