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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19. 2022

스무 살, 서산이의 소울푸드

썸바디스 소울 푸드

그녀의 소울푸드는 수제비다.


직접 반죽한 밀가루를 하루 정도 숙성시켜, 멸치와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낸 물이 포글포글 끓으면 반죽덩어리를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펴 뚝뚝 수제비를 떠 넣는다. 그다음에 감자, 양파, 호박, 청고추, 홍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마지막에 소금과 국민 MSG 쇠고기 맛 다시다도 적당히 솔솔 뿌린다.


가끔 식재료로 묵은 김치를 넣고, 칼칼한 김치 수제비를 하기도 하고, 된장을 풀어 된장국 베이스의 수제비를 끓였지만 그녀는 감자를 넣고 끓인 감자수제비를 가장 좋아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 스무 살,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생활을 시작 즈음의 이야기다. 학교 1학년 신입생 첫 학기 중,  이모집에서 몇 달을 지내다 이모가 결혼을 하게 되어 갑자기 새로운 거처를 구해야만 했다. 

기숙사는 성적 때문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고, 집 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해 당장 하숙집이나 원룸을 구할 상황도 못 됐다. 학이라면 고향집에라도 내려 가 있을 텐데, 이제 막 중간고사를 끝낸 즈음이었다. 부모님이 어떻게든 방을 얻을 보증금을 알아보고 계신 거 같았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모는 정 방이 안 구해지면, 자기네 신혼집에서 방을 구할 때까지 살면 된다라고 했지만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고개를 저었다.




'톰슨가젤, 무슨 고민 있어?'


과 동기인 서산이었다. 그 아이 본명이 서산은 아니고 서산 출신이라 나는 그 앨 서산이라고 불렀다.  고향은 논산이었는데 우리가 고향이 가깝다고 친하게 지낸 건 아니었다. 나는 이상하게 말을 뭉개는 그 아이의 서산 사투리가 영 어색했고, 알아듣기도 어려워서 그 친구가 뭐라고 하면 대충 '그래, 그래, 응, 응' 하는 식으로 건성으로 대했다.


서산이는 지대얕넓 스타일로 모든 것에 알은체를 했고 견해를 달았다. 관망자나 논평가처럼 평가하고 의견을 달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잘난 척처럼 느껴져 거리를 두었다. 그러니까 서산이는 그렇게 호감형은 아니었다. 서산이 쪽에서 보기에 나도 그렇게 호감형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래도 자기를 심드렁하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겠지. 우리는 고양이 개 보듯, 서로를 쓱 쳐다보며 지나쳤다. 그날은 같은 교양과목을 듣고 나오는 중에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톰슨가젤, 아까 수업 중에 보니까 너어, 영 표정이 안 좋더라. 어디 아퍼?'

'아니. 그건 아니야'

'무슨 일인데?'

'아, 별 거 아야'

'표정은 별 건데?'

'그냥, 뭐....'


서산이 꽤 집요하게 묻기도 했고, 나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라,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지금 당장 살 곳이 없어졌노라고. 이상하게 그렇게 친한 애도 아닌데 털어놓고 나니 시원했다. 그동안 왜 우리 집은 서울이 아닌 걸까? 왜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닐까? 왜 나는 이모집 아니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걸까? 며칠 동안을 온통 우울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라고.




'뭐, 그런 거였어?'


대단한 거라도 기대한 마냥, 서산이의 첫 반응은 시시하다는 투였다. 친하지도 않은 너에게 기껏 시간을 내어 속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돌아 온 반응이 시시하다니? 역시 넌 재수 없어. 속으로 말을 삼켰다.


'내 방에서 살. 물론 월세는 반반. 그래도 혼자 방 쓰는 것보다 절약되고 나을 거야. 하숙집인데 밥은 안 먹고 방만 빌려 쓰는 식이야. 방이 꽤 넓어서 둘이 쓰기에 무리 없을 걸.'


뜻밖의 제안이었다. 잠깐만, 재수 없다는 말 취소. 이모네 신혼집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과동기 서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 몇 배는 나을 거 같았다. 서산이 방은 학교 앞이니 교통비도 절약되고, 보증금은 서산이가 이미 치뤄 필요 없다고 하니, 월세만 나눠서 내면 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경제적이다. 얘랑 나랑 같이 잘 지낼 수 있으려나. 따위는 너무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아쉬운 사람이 맞춰야지. 에라 모르겠다. 오케이!




그렇게 서산이와 동거를 하게 되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우리는 잘 맞았다. 정리정돈도 적당히 깔끔하게 했고, 쓰레기통도 번갈아 가며 잘 비웠다. 헤어 드라이도 나눠서 잘 사용했고, 내가 없는 물건은 그 아이에게 빌려 쓰고, 그 아이가 없는 물건은 내가 빌려주며. 무엇보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같이 밥을 해 먹는 게 좋았다.


서산이는 여러모로 아는 것이 많았고, 아는 척도 잘했는데 요리도 그랬다. 과 엠티를 갔을 때도 직접 하는지 않는데 누군가 라면을 끓이면 그 옆에서 '그게 아니지. 스프를 먼저 넣어야지. 그다음에 면을 넣어야지. 면이 끓는 동안 면발을 젓가락으로 이렇게  공기 중으로 몇 번이고 들어 올려 줘야지. 뜨거운 면발이 찬 공기와 만나면서 면이 수축되며 쫄깃함이 더해진다고.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조직이 더욱 치밀해지는 거라고.' 누가 저 주둥이 좀 막아라.


 

여러 방면에 의견이 많았던 서산이는 먹는 거 말고는 요리라고는 할 줄 모르는 나를 만나서 '야, 야, 그게 아니지. 나와 봐. 내가 할게. 어휴.' 엉거주춤 주방에 서 있는 나를 밀치고 자기가 칼을 잡기를 여러 번. 몇 개 없는 리도구를 솜씨껏 활용해서 묵은 김치와 참치, 당면을 넣고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저세상급 김치찌개를 끓이거나 달달하고 짭조름한 알감자 조림이나 진미채 볶음 같은 밥도둑들을 뚝딱 만들어 냈다.


'이야 넌 어떻게 이렇게 잘해?'

재수 없다고 욕할 땐 언제고 칭찬이 절로 나왔다. 역시 사람은 먹이고 볼 일이다.

'내가 자취 경력만 3년이야.'


알고 보니 서산이는 고등학교 때도 집을 나와 자취를 했다고 했다. 굶어 죽지 않고 기 위해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게 되었다나.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서산이한테 뭔가 내공이 느껴졌다.




나중에 좀 더 친해진 뒤에 알게 된 거지만 서산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서산이는 그때부터 혼자 살게 되었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내가 포기했다고. 둘 다'


서산이는 그때 할머니 집에 잠깐 지내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은 둘 다 얼마 안 가 재혼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서산이에게 용돈은 넉넉히 부쳐줬지만 그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그 얘기를 나눈 날, 너무 늦은 밤이라 공동 주방을 사용하지 못하고 방 안에서 전기밥솥에 물을 끓여 주꾸미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눈물이 찔끔 났다.


'서산아. 고백할 게 하나 있어. 나, 그동안 너 아는 척 많이 하는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속으로 욕했다. 미안.'

'야! 뭐야 너 하하하. 그거라면 샘샘 치자. 나는 너 새침한 호박씨라고 욕했지롱'


그날 밤만큼은 서산이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몇 잔의 소주를 더 들이켜고,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선배들에게 배운 '처음처럼', '바위처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옆방에서 '야, 그만 쳐 자!'라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서산이는 기분이 가라앉거나 속상할 때 수제비를 한다고 했다. 밀가루 반죽을 빚을 때 마음속 앙금들을 그 반죽에 같이 뭉쳐 패대기를 치면서 기분을 푼다고 했다. 상완근이 뻐근하도록 반죽을 패대기 치고 나면 어느새 기분도 풀려 있다고.


우리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소주 안주로 전기밥솥에 주꾸미를 데쳐 먹던 거, 밀가루 반죽을 패대기 치며 기분을 풀던 거.


2학년이 되면서 서산이는 학생회 활동과 여러 시위에 적극 가담하느라 바빴고, 나는 학과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나 대로 바빴다. 서로 소위 '노선'이 달랐기에 우리는 점차 멀어졌다. 그래도 그녀가 재수 없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조금쯤은 그녀의 평안을 빌어주었다.


수제비를 먹을 때면 그녀가 생각난다. 어디서든 행복하길.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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