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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Feb 26. 2022

북쪽 빈 동네

서울 동네 이야기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옆에 아직 철거되지 않은 공가들이 누워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아침이면 홈오피스로 쓰고 있는 방의 북쪽 창 밖으로 빈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들은 낮게 누워 있다. 숨소리 하나 어 나오지 않는, 온기 없는 집들이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하다.

시공사가 정해졌다고는 하나,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지 이주를 마치고도 철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뿌리내리고 살던 사람들이나 임시로 세 들어 살던 사람들 모두 떠나고

길고양이 몇 마리가 이 집, 저 집을 떠 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닌다.

햇살이 좋은 날에도 북향이라 볕이 잘 들지 않는 언덕, 그중 가파르게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앉아 고양이가 그루밍에 열중한다.

그러다 하늘을 낮게 가로지르며 전깃줄에 앉는 까마귀에 시선을 빼앗긴다.

까마귀는 고양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앉아 검은 눈동자를 굴린다.

고양이를 약 올리는 건지......



눈이 온다. 고양이들은 괜찮은 걸까? 며칠 전에 온 눈이 지붕 위에 그대로 쌓여 있는데 그 위에 새로운 눈이 쌓인다. 옛 집이 헐리고 그 위에 새집이 올라가면 새로운 인연들이 이곳에서 새 삶을 꿈꾸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낯선 동네에 낯선 사람들이 많이 늘었구나. 오로지 터줏대감들은 여기 살던 까마귀와 까치와 고양이들, 그리고 노인들 몇몇. 동네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미래 얘기를 한다. 여기에 새 아파트 단지가 올라오고, 동네가 천지개벽하고 집 값이 올라가고 인프라가 더 좋아질 거라는. 그리고 늘 말미에는 '어느 세월에...' 지주택이라 쉽지 않을 거라고 혀를 끌끌끌 차곤 한다.

언제 생겼을지 모르는 이제는 비어 있는 옛집들 위로 눈은 계속 쌓인다. 여기 살던 사람들의 꿈, 희망, 좌절, 특별할 거 없던 일상들이 조용히 눈에 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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