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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Mar 01. 2022

북쪽 빈 동네의 밤

서울 동네 이야기

오늘 밤 내려다본 북쪽 빈 동네.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완전히 빈 것은 아닌 모양. 오늘 불이 켜진 집 두 군데를 발견했다. 왠지 모를 반가움. 누군가 살고 있었구나. 어떤 사유로 철거지역으로 선정된 동네에 살고 있을까.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정릉이 달동네 빈민촌이었던 시절, 학교 선배를 따라 철거지역에 지지방문을 갔던 적이 있다. 밤, 모두가 자는 틈을 타 용역업체에 의해 기습으로 불법 철거가 이뤄지던 시절이다. 주민들이 하나, 둘 이주를 하고 난 뒤,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동네에 남아 있던 사람들, 제대로 된 보상책을 요구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은 밤이면 언제 철거 용역반이 들어닥칠지 몰라 불안해했다. 그들에게 머릿 수를 더해 힘을 주기 위해서 동아리 사람들 몇몇이 철거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디데이, 마을버스 안에서 선배가 속삭였다.


"여러 데모 현장에 가 봤지만 여기가 진짜 지옥이야. 정말 위험하고 무서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집에 가고 싶으면 가."


그 말을 들으니, 좁디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듯 미끄러지는 마을버스 안에서 횡격막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런 말은 버스에 타기 전에 하라고요. 이미 버스 안인데 여기 산 중턱에 내려서 어쩌라고. 속말을 삼켰다. 나도 선배도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침만 삼키고 있었다. 우리의 긴장감과 상관없이 버스는 마을 꼭대기 위에 걸친 달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잠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면 낮은 슬레이트 지붕, 시멘트 담벼락에 빨간 페인트로 단호하고 커다랗게 '불법점거지역' 또는 '철거민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휘갈겨 쓴 글씨체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빨간 채찍처럼 날카롭게 꽂히는 글씨들. 이대로 영원히 달까지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끽!


"종점이에요!"



마을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여기가 지옥이다!' 외치는 염라대왕 목소리만큼이나 서늘했다. 목을 움츠리며 내리던 그때의 우리들은 지금 생각하면 완전 애송이들이었다. 뭐가 뭔지 천지분간이 잘 안 되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던 시절. 삼삼오오. 망루 옆 철거민 투쟁본부라는 곳에 쭈볏쭈볏 발을 들였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한 때는 잘 나가는 마트 사장님이었지만 동업자가 물건 대금을 '갖고 튀는' 바람에 달동네 구멍가게로 흘러들어, 새 삶을 시작하려는 50대 김 씨 아저씨와 그 부인, 미자네 헤어방 원장님 방미자씨, 몇 년째 산아래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며, 컵떡볶이 장사로 겸업을 하고 있는 오사장님네 부부. 미장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 정씨. 학생들이 지지방문을 한다니, 몇몇 철거민분들이 대책 본부에 나와 있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너무나 어린애들이었다. 우리의 면면을 둘러본 어른들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별 도움은 안 되겠어' 하는 아쉬움과 '내 자식뻘 되는 녀석들이네' 하는 애틋함이 교차하는 눈빛.


"하이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기는 한데......"


달동네까지 어려운 걸음을 했다면 그분들은 믹스커피를 타 주셨고 우리는 긴장되는 가운데에도 달달한 커피를 호로록 잘 받아 마셨다. 결국 그날 밤은 너무 위험하다며, 다시 돌아가라는 철거 대책본부 사람들의 권고로 우리는 '아니다, 함께 하겠다' 버티다, 거의 반강제로 막차에 태워져 그곳을 떠났다. 며칠 뒤에 그곳이 강제 철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서는 간단하게 한토막 나왔지만 그 날밤의 치열하고 긴박했던 철거현장의 후문이 동아리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사람들이 많이 다쳤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거기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 한동안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어디로 가셨을까?


그리고 그 뒤로 10년이 지나 회사 가까운 곳에서 용산 철거민 사태가 발생했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세상은 또 말끔한 얼굴을 하고 제 갈 길을 간다. 용산 철거 지역, 사람들이 죽어간 그 자리에는 아직 어떤 건물도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공원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요즘은 코로나 선별 진료소로 쓰이고 있다.




북쪽 빈 동네의 밤.

쇠락해가는 집들,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금방 낡고 바스러졌다.

건축 연도가 언제인지 모를 집들, 빨간 기와,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빨간 벽돌의 구옥 다세대들, 중간중간 샌드위치 패널을 덧댄 지붕들이 보인다.

70년대부터 200년대까지 출생연도도 다양한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밤은 그들의 누추함을 조금은 가려주는 듯했다. 검푸른 어둠 속에 때 타고 주름진 얼굴을 숨기고, 가로등 아래서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집들.


밤은 낮의 민낯을 가리고 다가 올 공포를 교묘하게 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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