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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31. 2022

[전시] 우연히, 웨스 앤더슨

리뷰 앤 토크

#요즘전시 #우연히웨스앤더슨전시 #사진전추천


타이틀: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 (AWA)  Accidentally Wes Anderson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기간: 21. 11.17~2206.06
기획: 윌리 & 아만다 콜먼




기획이 좋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잘 알려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미술을 좋아하는 뉴요커 부부 윌리와 아만다는 2017년부터 전세계를 여행하며 웨스 앤더슨 영화에 나올 법한 풍광과 건물, 오브제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그 중 300여 점을 선별하여 2019년부터 전시를 시작, 마침내 작년 11월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영감을 주는 뮤즈가 대중적으로 꽤 성공한 영화미술이고 감독의 이름을 전시 타이틀로 삼았다는 점은 상업적으로 꽤 스마트한 시도인 듯 하다. 필히 이 전시를 보러 올 관람객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었으니. 웨스 앤더슨에게도 이득이 되는 기획인 것은 사실. 전시를 다녀 온 뒤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최근 개봉한 프렌치 디스패치의 영화 스트리밍 상영 횟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서로가 윈윈하는 이런 콜라보 작업은 커머셜 영역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에서도 흔한 전략이 되었다. 퀄리티가 얼마나 담보될 것인가가 승패의 관건. 대기줄이 상당히 긴 것으로 보아 대중적으로 이미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네이버 영화 정보 보기

프렌치 디스패치 네이버 영화 정보 보기



여행이 고픈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비행기를 타고 이국적 여행지로 떠나본 지 거의 3년이 넘어간다. 마지막 여행은 비지니스 출장으로 다녀 온 도쿄. 본부장님 수행원으로 2박 3일 간 비지니스 미팅과 시장조사를 위해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제는 이동하며 잠깐씩 눈으로 훑은 도쿄 거리와 형식적인 식사가 그리울 지경.

비행기 티켓을 연상하는 전시 티켓이 앙증맞다. 체크인과 탑승, 동시에 만나게 되는 첫번 째 전시 공간 부터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마치 VR 체험을 하듯, 그들이 다녀 온 여행지 사진 속에서 내가 그 곳에 서 있는 듯, 대리만족이 된다.



전세계 각국에서 발견한 웨스앤더슨 스타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하면 가장 먼저 파스텔 핑크 컬러의 호텔 전면이 떠오른다. 입체적이기 보다는 정면 노출, 대칭, 평면적인 구도가 특징적이다. 마치 그림이나 사진을 오려붙인 듯한 느낌 마저 드는 건축물들. 빛이 가장 찬란한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찍힌 듯, 피사체는 그림자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윌리와 아만다가 담아 낸 사진들도 그 기법을 충실히 따랐다. 밝고 경쾌한 색감들이 보는 사람들의 기분마저 상쾌하게 한다.

(영화 내용은 살인, 치정, 배신, 횡령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모와 범죄들이 뒤엉켜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로맨틱하고 밝고 경쾌한 이 영화의 미술적 기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면에서 응시한 공간은 정직함, 편안함, 정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슬픔이나 분노, 우울감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전시 관람하는 동안에는 그 사진들 속에 혹시라도 내가 다녀왔던 장소가 있다면 반가움과 그리움을, 그리고 가 보고 싶었던 곳이 나온다면 '언젠가 가 볼꺼야' 하는 의지와 희망을 품게 한다.

영화_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 사진들]



사진 찍는 사진전

예전에는 전시장에서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허용된 전시가 많다. 전체 허용은 아니더라도 일부 가능한 곳을 지정하여, 일상의 기록을 남기고 SNS에 공유하고 싶은 관람객의 욕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곳도 늘어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구역 제한 없이 맘껏 사진 촬영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전시를 방해하지 않는 매너를 지키는 선에서. 가만 보니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공간이 디자인 되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전시월 질감과 컬러, 조명 세팅, 공간 구성, 동선 등 전시공간 세팅이 테마에 따라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잘 구현되었다.


여행의 감성을 살린 포토제닉한 특별 공간 기획도 돋보인다. 예를 들면 기차를 타고 가며 영상으로 담았을 법한 여행지 풍광을 담아 숏필름으로 제작, 벽 전면에 빔으로 쏘아 상영하고 그 앞에 가벽에 창을 내어 세워두었다. 자연스럽게 기차 안에 있는 듯한 구도가 잡히고, 관람객이 창밖을 내다보며 시시각각 바뀌는 배경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였다.


진짜 여행 가고 싶다.

가짜 여행, 진짜 여행이 어디 있겠냐마는 전시 공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진짜, 여행가고 싶다." 이심전심의 순간, 어디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 나와 그들이 소망한 '진짜 여행'이라는 것은 이 압박감과 통제를 벗어난 해방감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여행에서 느끼는 '온전한 자아를 만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현관문만 나서도 일상의 루트를 벗어나 새로운 나를 만나는 발걸음과 사유가 시작된다면 그것은 여행의 시작이다. 그러나 코비드19 이후, 사람들의 동선은 기록되고 감염과 전파의 잠재적 위험 속에서 정해진 동선과 수칙을 벗어나지 말라는 끝없는 경고를 접해야 했다. 그것은 공동체의 평안을 위한 기본 질서를 넘어서는 통제였다. 학습된 공포감과 피로감이 바이러스의 실체적 위험을 능가한다는 생각 마저 든다. 여행이 일상탈출과 리프레시 방식의 하나로 정의된다면, 진짜 여행은 코로나 19 이후 생긴 과도하고 강압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일상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에도 '코로나와 방역정책'은 우리 옆에 있었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행의 기술을 다시 펼치다

그래도 언젠가 이 시국이 끝나고, 집을 떠나 어딘가에서 홀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저런 풍경을 만난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첫 배낭여행을 떠나며, 여행을 제대로 즐기자며 읽었던 알래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을 다시 폈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지에 대한 기록이 거의 모든 인간의 본능에 해당되는 것을 일찌기 깨달은 사람으로서 오늘 전시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 그 과도함에 조금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겠지. 여기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잔뜩 있군 하며...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쪽)”





<책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8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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