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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26. 2022

수수께끼 변주곡_안드레 애치먼

리뷰앤토크


수수께끼 변주곡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안드레 애치먼의 또 다른 소설책입니다.

다섯 개의 사랑이야기로 된 옴니버스 소설인데요.

첫 번째 이야기 '첫사랑'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인물, 서사 구조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이제 막 성 정체성과 사랑에 눈 뜬 열두 살 소년이 그 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 많은 아름답고 재능 있는 청년을 숭배하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은 콜바넴과 비슷해요.

한편,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당시의 폭력적 사회 현실을 담아내고 있어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에서 사회상을 담아내는 것으로 서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는 각각 소설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담당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서 만납니다.

비교적 센싱이 빠른 저조차도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앗! 그런 거였어?!' 하고 뒤늦게 이야기의 전말을 알아차려 당혹감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여 귀여움과 안타까움, 슬픔, 마침내 이해하기까지 트리플 액셀급 감성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는 아래와 같아요.

주인공 파울로는 '콜바넴' 엘리오처럼 음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의 앤티크 책상을 수리하러 온 스물아홉의 마을 청년 조반니를 만난 날부터 은밀한 비밀을 가슴에 품게 되는데요.


나는 그의 이름이 조반니이며 다들 난니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변에서, 교회 옆 야외 상영관에서, 밤중에 카페 델'울리보 근처에서 여러 번 보기도 했다. 내 존재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을 남자가 내 이름을 아는 데다 우리 집 지붕 아래 서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애써 감추려고 했다.


조반니라는 목수 청년을 만나기 전부터 소년 파울로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직 자기 감정과 행동에 확신은 없지만 이해하지 못한 제 열정에 등 떠밀려 당돌해지곤 하는 법이죠. 파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이미 발걸음은 조반니의 목공소로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조반니가 책상을 수리하는 동안 파울로는 하교 길에 빵을 사 가지고 그 목공소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작업이 얼마나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중간 점검이라도 나온 듯한 포스였지만 그러기엔 너무 꼬꼬마인 파울로는 조반니에게 '가구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파울로는 나중에 고백합니다. 그게 구애 인지도 몰랐다고. 오히려 조반니는 알아차리고 있었죠. 조반니 파울로의 마음을 알아차린 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형아'이자 '선생님'으로 다정하게  고가구 리폼 과정을 가르칩니다.


그는 커다란 그림 액자를 가져왔다. 전에도 본 적이 있건만 우리 액자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굉장히 깨끗하고 탈색된 것처럼 보이는 액자는 온몸이 구릿빛으로 탔지만 엉덩이는 땀띠 파우더처럼 하얀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액자가 완성되려면 멀었다고, 꽃 모양으로 조각된 몰딩과 모서리의 솟은 부분에 쌓인 때를 벗겨 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 거죠?"
"시범을 보여 줄게.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안 그러면요?"
"그럼 넌 해고되는 거지."
우리는 서로 웃어 보였다.


가구 수리하는 과정에서 거들기보다는 방해가 될 텐데, 조반니는 친절하게 파울로의 수준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 일을 가르치죠. 조반니를 좋아하는 파울로는 혼자서 수줍은 열정을 불태웁니다. 파울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독자는 그 귀여운 의도를 읽고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어요.


'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당신이 내 유일한 친구예요'


또래보다 일찍 정체성에 눈 뜬 파울로는 조반니가 친구이자 유일한 우정으로 느껴져 속마음을 털어놓게 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가던 조반니의 작업실을 매일 가게 되는 파울로. 조반니는 파울로가 자주 와 말벗도 하고, 자기한테 목공을 배우겠다는 것이 귀엽고 기특하면서도, 왜 또래와 어울리지 않는지 걱정하죠. 차츰 속마음도 나누고, 한숨도 나누고, 땀내 나는 목공일에 서로의 체취도 맡게 됩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목공 약물이 파울로의 얼굴에 튀고 그걸 닦아주며 스킨십도 하게 됩니다. 이때 파울로의 내면에서는 핵폭탄급 자각이 일어납니다. 성호르몬이 활화산급으로 분출하여 마침내 자기가 형제애 이상의 감정을 조반니에게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둘 사이에 모종의 일(?)이 발생하고, 파울로는 혼자 예배당에서 조반니가 자기 얼굴의 약물을 닦아준 수건으로 자신의 소중한 부위를 자극하며 그를 열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약물이 묻어있던 수건은 그의 여린 부위를 속수무책으로 자극하여 엄청난 쓰라림을 안겨 주었고, 동시에 파울로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현타와 수치심에 그만 울고 맙니다.


시일이 지나 가구가 완성되고, 파울로가 다시 용기를 내 조반니의 목공소를 찾았을 때, 조반니는 파울로에게 더 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말로 상처를 입히고 맙니다. 그냥 동네 동생으로 지낼 수 없는 그간의 사정이 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간청도 비난도 아닌 말로 파울로를 물리치는 조반니. 짝사랑의 실패로 파울로는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파울로네 집이 불에 타고 말아요. 누가 불을 낸 지 수색하기 위한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지고, 마을 청년들이 끌려가 심문을 받습니다. 그 안에는 조반니와 그의 동생도 끼어 있습니다. 고문을 불사하는 수사에도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파울로 가족은 그 섬을 떠나게 됩니다. 집도 땅도 모두 버려둔 채로. 누군가는 이 일로 이득을 취했고, 누군가는 상처받은 채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그 뒤에 십 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 섬에 파울로는 오직 한 사람 때문에 방문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인류학자처럼 파울로는 화재 당시의 일들과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재를 둘러싼 비밀과 조반니의 비밀을 알게 되죠. 왜 조반니가 자기를 더 이상 목공소에 오지 못하게 했는지, 왜 파울로네 집이 불타게 되었는지, 그리고 화재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반니는 결국 섬마을을 떠나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진실의 얼굴을 드러냅니. 그리고 자기의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그날의 비밀도요.


난니는 아니야. 네 아버지는 그 친구한테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 그래 너희 집에 밀수품이 있다는 걸 다들 알았지만 감히 아무 말도 못 했지. 난니는 가장 만만한 상대였어. 경찰은 조직폭력단 짓인 걸 알면서도 난니를 몰아붙였지."

<중략>

그 집은 불이 난 게 아니야. 태운 거지. 짐승들이. 다들 보러 갔어. 나도 보러 갔어."


후반부를 읽고 작가님은 실제로 있었던 성소수자 혐오 사건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일부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부끄러운 사건이 도처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니까요. 이 소설은 <콜바넴>에서 맛보았던 안드레 애치먼의 치밀하고 섬세한 소년의 감성 묘사와 장면 묘사가 일품입니다. 거기에 뜻밖에 서사가 빙산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라 나름의 서스펜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 '첫사랑'만 읽고도 소설집의 제목이 왜 <수수께끼 변주곡> 인지도 알게 됩니다. 인생은 알쏭달쏭한 사건들이 비연속적으로 툭툭 실체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연결된 사건들의 유기적 집합체인지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던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이해하게 되고, 내가 알고 있었던 가까운 사람의 전혀 새로운 과거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아 그랬겠구나.' 마침내 인생 입방체가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투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도 내 관심이 제대로 된 사람에게 향했고 나뿐만 아니라 그의 진실을 읽었음이 보였다. 나는 그를 원했고 열두 살의 내가 아니라 좀 더 컸다면 그도 나를 원했을 것이다. 내 열정이 물려받은 것이고, 따라서 운명이라는 사실이 즐겁기까지 했다. 운명은 언제나 표시를 남긴다.

 

수수께끼 같은 스토리가 더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세요~!



http://naver.me/xMbsZ2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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