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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Feb 20. 2022

왜 고유정은 전남편을 살해했을까?

-북리뷰 '완전한 행복'

책정보, 완전한 행복 : 네이버 책 (naver.com)


작가는 그 사건 자체를 다룬 소설은 아니라 했지만, 처음 몇 장을 읽고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19년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 고유정의 전남편 살해 사건.


세상은 이 사건에서 엽기적인 살해 방식과 결국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피의자가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으로 가벼운 형을 받은 것에 더 설왕설래가 많은 것 같지만, 작가가 주목한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 계기다.


[책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아내는 그의 거절을 거절했다. 의견 차이는 단 몇 분 만에 싸움으로 번졌다."


행복에 대한 한 인간의 신념은 타인에겐 유해할 수 있다. 이 전제를 무시하면 그 결과는 처참해진다. 소설 속 아내 신유나는 자신은 '완전한 행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데 상대방이 그 행복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면 감정과 태도가 순식간에 변한다.


[책 속에서]

"그때까지도 아내는 달착지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대를 배반하고 싶진 않았으나, 좋았던 분위기를 고 싶지도 않았으나, 그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아니. 못해.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스위치를 끈 것처럼, 단숨에, 싹.


나는 이만큼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데,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의 거절이나 이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유나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침 영역을 침범당한 것처럼 행동한다. 나의 행복, 가족의 행복을 위한 자기의 플랜을 거절하고, 자신의 선의를 의심하고 반기를 든다? 처음에는 가출이나 묵언시위 형태의 길들이기로 상대방을 항복시키고 그 마자도 통하지 않을 때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가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다면? 애당초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N명의 인간은 N개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인생의 매순간 마다 그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은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주장만큼 무모하다. 분노와 폭력이 습관화되면 수법이 점점 진화한다. 그 끝은 이미 고유정 사건이 말해주고 있다.

 



소설은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구성원과 합의되지 않은 '공동체의 행복'은 '그만의 행복'일뿐이다. 그 행복은 타인에겐 파괴적이고 공포스럽다. 신유나라는 극강의 나르시시스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엄격한 조모에게 학대받고 조부의 회피 속에서 보낸 시간이 있다. 유년시절의 양육환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범죄행위 자체를 합리화해주지는 못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냈어도 성인이 된 뒤,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가족 밖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점검하고, 조율하고, 제동거는 노하우들을 습득한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사람과 세상을 배치하는 것은 낯선 것도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감지하고 그와 나의 욕망이 충돌할 때 이를 조율하기 위해 자기 욕망을 점검하고 적절히 멈추는 장치를 거부하는 행위, 오직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은 불행을 자초한다.


왜 그랬어? 피의자에게 물은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피해자 가족이 물었고, 그다음에 포토라인 밖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그리고 무수한 댓글러들이 묻고 추측하고 답했다. 치정도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다. 허망하게도 대단한 원인이,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말을 안 들어서', '나를 짜증 나게 해서', '내 뜻에 반대해서'


"왜 내 말을 안 듣지?"

"왜 나를 짜증 나게 하지?"

"왜 내 뜻에 반대하지?"


낯설지 않은 물음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저런 물음은 누구에게나 예사롭게 등장할 수 있다. 자기의 고유성과 독자성에 과몰입 상태라는 얘기다. 과몰입에 정도에 따라 행위가 결정될 터이고.


이기적 자아론(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이 일반적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자신과 타인의 삶의 평안을 위해서 '성찰'이 작동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성찰은 욕망대로 살지 못해 다소 피곤하고 억울하고 밑지는 거 같을 때 오히려 나를 멈춰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밑진다고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오는 행위에 제동장치가 될 수 있다.



소설은 정유정 작가님의 전작들 '7년의 밤', '28'에서 맛보았던 흥미를 자극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치의 어긋남 없이 플롯이 딱 떨어지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유의 속도감 있고 치밀한 서사와 밀도 있는 심리묘사, 상태 묘사는 독자를 완전히 사건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글을 읽는 내내 온몸의 세포가 음습함과 공포에 움츠러들었다.


소설에서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고유정 사건보다 더 많은 허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오직 한 사람만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하지 못한다. 다른 소설과 달리 핵심인물인 신유나_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처참한 죽음으로 그 끝을 인도한 사람은 자기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그게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왜'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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