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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04. 2023

지겨운 회사 생활을 버티는 지혜

글쓰는 직장인

1.

오늘의 문장들

습관화는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자극에 대한 반응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대개 이런 과정은 빠른 속도로 이뤄지며 습관화의 저주는 태어나기 전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닌다. 한편으로 보면 습관화는 우리로 하여금 배움의 능력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되풀이를 통해 몸에 익히는 게 배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관화는 어떤 일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극을 무뎌지게 만든다. 직장에서 마케팅 제안서를 쓰든, 수술실에서 집도를 하든, 방송에서 사회를 보든, 자동차 경주에 나가 운전을 하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든, 돈을 많이 벌든, 이 모든 것에 우리는 익숙해진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이든 처음 할 때 느꼈던 짜릿함은 곧 사라지고 만다.
습관화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습관화를 의식적으로 활용한다면, 우리 인생은 훨씬 편안해질 수 있다. 습관화는 불편한 일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짜증스럽고 지루한 일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불편한 자극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고 신나는 일일수록 한 번에 오래 하기보다는 간격을 두고 자주 끊어서 한다. 이렇게 끊어줌으로써 습관화로 인한 무뎌짐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법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51가지 심리학 |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공저/김희상 역


2.

'이 팀에 한 오 년 정도 있었는데, 이 바닥 고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겁나요. 일도 재미없고.'

커피를 마시며 동료가 진솔하게 고백해 왔다. 어떤 심정인지 알 거 같다. 예전 팀에서 마지막 몇 달 동안, 나의 고민도 그러했다. 이대로 정체되어 고인 물 취급받고,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진 옛날 성공 방정식이나 읊을까 봐. 성공한 것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그 마저도 시원찮은 거 같다. 하긴 연봉도 평준화, 실적도 평준화, 튀는 소수보다 제너럴 한 다수를 선호하는 회사 인사방침에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형편이긴 했다.


무엇이 그토록 스스로를 지루하고 정체된 구성원으로 여기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학습된 무력함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 우물 깊게 파는 전문가보다 여러 직무를 두루두루 경험하면서 업무 스펙트럼과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를 넓게 익힌 제너럴 한 회사원, 그래서 필요할 때 어느 자리에 꽂히든, 무엇이든 해내는, 모듈화 된 직원을 육성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특정 직무로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하면 방침에 어긋나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차가 쌓일수록 무거워진 몸값과 다루기 어렵다는 편견 속에서 고연차 직원들은(그래봤자 이제 10년 차 넘겼을 뿐이다.) 조직적 내 시대에 뒤처지는,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게 되었다. 누구도 그들을 인사이드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꾸 회사 밖으로, 안전망 없는 사회 속으로 내모는 것이 경제위기 시대의 진상이긴 하지만, 이제 한참 활약할 10년 차들이 모여서 희망퇴직과 고인물 운운하는 것은 아직, 그 '풀' 안에 속하지 않는데, 지레짐작 '나도 정리해고 대상일 거야' 섣부른 자기 문제화 현상일 수 있다.  


오늘, 인생에서는 한참 청춘인데, 이 회사 내에서 고인물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같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돌아와 저 문장을 읽었을 때,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좋았던 경험, 신났던 일 경험이 많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좋았던 경험들이 그저 그런 평범한 것들이 되었고, 평범함이 주는 안락함을 넘어, 지루함과 짜증으로 남았노라고. 쉽사리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일견 맞는 말도 있다.


이 팀에 왜 그토록 오래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처음에는 재밌었죠. 모든 일이 새로웠고, 배우는 것도 많았고, 차츰 제 실력을 발휘하면서 성과도 내었고요. 눈에 성과가 바로 보이니까 그게 되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다음번 기획을 이어나갈 동력도 되었고요."

그렇게 재밌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재미가 없어졌냐. 일이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분명 중간중간 성취도 있고, 성과도 낼 것이다. 일련의 그 과정이 반복되니, 그 의미와 재미가 예전만 못한 것이다.


직무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거나, 이를테면 직무변경(이동) 또는 조직변경(퇴사)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자신이 없다면 현재 위치에서 일의 의미와 재미를 새롭게 보는 시선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일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대한다면, '저기서 저런 제안을 한다고?' '저 일을 저렇게 처리한다고?' 새로운 비평적 시각이 열릴지도 모른다. 이 길고, 지루한 하루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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