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희가 지금 당장 발급이 된다, 안 된다 말씀드리기는 힘들고요, 우선 신청서 작성하시면 이따가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고객은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각종 끈이나 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소득서류를 받고 신청서를 받아 심사를 해보니 결과는 "발급불가". 전화수화기를 들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신용점수가 낮아서 발급이 안된다고 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뭐."
며칠 뒤 그 고객이 또 은행을 방문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그때 그 신용카드 건은 죄송해요. 심사를 넣었는데 발급이 불가하다고 해서요."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이렇게 됐어요. 빚도 있고 신용불량자도 되고. 그래서 안 되는 건가 봐."
오래전 고객은자신의 친구를 위해 대신 보증을 서줬다. 그리고 그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부지런히 갚았지만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빚을 다 갚지못했고,사업에 필요한 사업 자금 대출도 낮아진 신용도때문에 받을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나 좋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객은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나와이야기하고 있었다.그의얼굴에서 그늘을 찾기 힘들어, 지금 하는 얘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적은 돈이지만 빚도 갚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열심히 살아가는 고객이 멋져 보였다.
"고객님, 이거 하나 드세요."
나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고객에게 건넸다.
"언제든 궁금하거나 안 되는 금융 업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고객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당황한 나도 계속 인사했다. 그 뒤로 그 고객이 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친절히 맞이했고 매번올 때마다 음료수 한 병 건네는 것으로 그를 응원했다. 힘들어하는 전자 금융 업무는 내가 직접 해주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몇 번이고 설명했다. 빚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1년이 지나서 물었을 때도 여전히 빚을 갚는 중이라 했다. 아무래도 사업이 어렵거나 빚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1년 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일할 정도로바쁘게일하면서 말이다. 나는 매사에 긍정적인 그의 태도와 열심히 사는 그의 모습에 응원과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몇 년이 흘렀다. 그러다 2020년 1월 아시아권으로부터 시작해 전 세계 모든 대륙으로 퍼져 수많은 사망자를 낳은, 전 세계인의 일상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버린 전염병이 발생했다. COVID 19. 흔히 코로나라고도불렸다. 코로나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사람들 간의 접촉은 제한됐다. 마스크는 필수가 됐고 외출 자제가 요구됐으며 국가에서 상점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각종 대면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문을 닫는 상가들이 줄을 이었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은행 객장을 방문하는 고객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가끔 오는 개인 사업자 고객들 중에는 폐업으로 인해 통장을 해지하러 오는 고객들도 상당했다.
개인 사업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문득 보증을 잘못 서서 신용불량자가 됐다던 그 고객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그 고객을 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잘 나가던 개인 사업자들도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 마당인데 그 고객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시련까지 겹치니 하늘이 무심하시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고객이 은행을 방문했다. 혹시나 사업을 그만두고 온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고객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뜸하셔서 무슨 일 있으신 건가 했어요."
"미안 미안. 너무 바빠가지고 여기 올 시간도 없었어~!"
그래도 뜸하셨던 이유가 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한시름 놨다.
"아 바쁘셨구나. 바쁜 건 좋은 거잖아요! 요즘같이 불경기에."
"그러게 말이야. 나는 진짜 추석 하루, 설날 하루 빼고는 1년 내내 일해 아주. 죽겠다니까 지금?"
"와 그렇게 일이 잘되시는 거예요? 다들 힘들다고 난리인데?"
"우리가 끈 만드는회사였잖아. 마스크 끈! 요즘 마스크 없어서 난리인 거 알지? 설비 증설하고 공장도 하나 더 매입하고. 요즘 아주 일이 끝이 없어. 행복한 비명이지 뭐."
마스크끈! 무릎을 탁 쳤다.
"그때 그 빚도 다 갚고 지금은 이제 흑자야. 참 별 일이지. 진짜 바닥 끝까지 갔었는데 열심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 남들은 힘들다고 난리인데 나는 다른 의미로 힘들어."
입으로는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서는 활기가 느껴졌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도 눈은 웃고 있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내 사업이 잘된 것도 아닌데 왜일까. 응원하던 사람이 잘돼서 그런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고마워. 대리님이 이렇게 잘해줘서 내가 잘된 것 같아. 다음에 또 올게!"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앞으로는 꽃길만 걷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면 된다. 무엇이든 말이다. 이루겠노라 생각하고 될 때까지 노력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물론 그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실패를 할 수도, 좌절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노력을 그만두고 주저앉아 버리면 그때는 정말 실패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실패라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노력해, 끝내 목표를 이룬다면 지금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그저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의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실패냐 성공이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왜냐.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란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일이 안 풀린다고, 열심히 했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낙담하지 말자. 지금이 인생의 종착점은 아니지 않은가. 나 자신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성공이라는 목표를 이룰 날이 오지 않을까. 코로나라는 힘든 시국에 마스크 끈을 만들어 하루아침에 모든 빚을 청산한 그고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