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친권자가 자식을 체벌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졌다. 이른바 민법상의 자녀 징계권인데,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서 이제 사랑의 매는 더 이상 부모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 아동 폭력으로 간주된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가. 왜 그럴까. 성인과 달리 어린 나이에 겪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 폭력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많다. 나의 지금 한 마디가, 혹은 한 번의 체벌이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 양육한다는 것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른다.
"고객님,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78세의 여성 고객님께서 자리로오셨다. 밖에 날이 더운지종이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자리에 앉으셨다.
"아이고~ 덥다. 날이 엄청 덥네. 여기가 천국이야."
"여름은 여름인가 봐요. 진짜 덥죠?"
"응. 더워 죽어 아주. 나 휴대폰 바꿨는데 이전에 있던 뱅킹이 없어졌걸랑? 여기다가 깔아줘요."
고객님으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았는데 부채질하시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냥 종이가 아니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였다.
"고객님, 그림 좋아하시나 봐요! 예쁜 그림이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사? 뭘? 이거? 하하하 이거 내가 그린 거야! 솜씨가 괜찮은가 보지?"
정말 멋진 그림이었다. 일반인이 직접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멋졌다.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나 싶었다. 시쳇말로 똥손인 내 눈에는 할머니가 그저 부러웠다.
"센터에서 할머니들 모아놓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솜씨 좀 발휘해 봤지."
할머니의 어머니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그 당시 여성이 고등학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자녀 교육에 관해 집안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의 어머니 역시 자식들 교육에 열정적이었다.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늘 말했고, 자식들도 열심히 공부하길 바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재능은 공부가 아닌 미술에 있었다. 포스터나 사진이 귀하던 시절, 학급 친구들이 할머니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할머니의 미술 솜씨는 뛰어났다. 미술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몰려와 대신 그림을 그려달라고도 했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릴 때누구보다 행복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가 못마땅했다. 공부는 안 하고 그림만 그리는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공부하는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릴 때면,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또! 또! 또! 쓸데없는 거 하고 앉아있네!그렇게 쓸데없는 거 하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하니? 아니, 도대체 그런 거해서 뭐 할래?"
몸서리를 치며 고객님께서 이야기하셨다.
"아주 그렇게 매번 '쓸데없는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셨어. 그러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미술이 나중에는 생각만 해도 싫더라고. 지금도 여전히 싫어요. 이 그림이야, 센터에서 다 같이 그리라고 하니까 그린 거지만......"
안타까웠다. 만약 어머니께서 고객님의 재능을 키워주셨다면 고객님의 삶은 지금과 아예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도 기억하리만큼 듣기 싫었던 그 단어, "쓸데없는 것"을 말하며 혼내지만 않으셨어도 고객님은 다른 삶을 살고 계셨을지 모른다.
"아이고 내가 삼촌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 다 늙어가지고 옛날 얘기하면 뭐 하겠어요. 호호호. 수고해요!"
어릴 때부터 말뚝에 묶어놓은 아기 코끼리는 성장해 말뚝을 뽑을 힘이 생겨도 말뚝을 뽑지 못한다. 엄마의 꾸지람이 비수가 되어 고객님의 날개를 잘라냈듯이 말이다. 난 가끔 과연 부모라는 존재가 자녀라는 한 인간의 삶을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훈육이라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녀의 삶에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칼을 대고 있는 부모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한 번 잘라낸 종이는 다시 이어 붙여도 반드시 흠이 남는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완전무결하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부모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낳아만 놓고 자식을 버리거나, 자식을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거나, 자식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양육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백일도 안 된 아이가 부모에게 맞아 죽었다느니, 부모가 며칠간 집을 비워 아이가 굶어 숨졌다느니 하는 등의 기사를 볼 때면 마음이 무겁다.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고 끊임없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짜 부모의모습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