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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Sep 10. 2023

나만의 첫 고객

 은행원은 매일 수많은 고객들을 응대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모두가 같은 고객은 아니다. 돈을 많이 예치해 놔서 누구는 VIP이고 누구는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은행원 각자가 본인과 잘 맞는 고객이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좋아하는 고객은 대개 공통되지만,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싫어하는 고객도 나와는 잘 맞는 경우가 있다. 진심이 서로 통하는 고객. 그게 진짜 나만의 고객이다.


 그날은 초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따뜻한 햇빛이 객장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어서 배도 부르고, 날씨는 따뜻하고. 낮잠 한숨 자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날 오후였다. 어느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오자마자 번호표도 뽑지 않은 채 전기요금을 내달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한 손에는 통장이 들려있었다. 3초 정도의 정적. 나는 일어나서 고객님을 내 자리로 안내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고객님 이미 기피 고객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온 지 얼마 안 된 나만 몰랐을 뿐.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의 머리는 일주일 됐을까? 아니면 한 달? 언제 감았는지 가늠조차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초여름의 따뜻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옷은 패딩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으며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앞치마도 언제 세탁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얼룩덜룩했다. 그녀가 내 앞에 앉자마자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겨져 왔다. 따뜻한 날씨와 더불어 냄새가 활기차게 퍼져나간 탓일 것이다. 나이는 70대 초반 정도로 돼보였다.

 "나 이거 전기세 좀 자동으로 나가게 해 줘"

 한전과는 펌뱅킹 계약이 돼있어서 창구에서 신청할 수 없고  본인이 직접 전화로 자동이체 신청을 해야 한다.

 "네네, 도와드릴게요. 지금은 손님이 없어서 제가 바로 해드리지만 다음부터는 오시면 번호표 뽑으셔야 해요? 아셨죠? 그런데 전기요금 자동이체는 직접 한전에 전화하셔야 하는데......"

 "몰라 나 할 줄 몰라. 삼촌이 그냥 해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원칙상 이런 상황이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날도 더운데 이렇게 오신 고객님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70대 어르신께 알아서 전화로 신청하시라고 할 수도 없고. 미칠 지경이었다.

 "고객님 핸드폰 한 번 줘보세요. 아 네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여기 은행인데요, 앞에 계신 고객님이 전기요금 자동납부 신청하신다고 하셔서요. 어르신이라 못하실 것 같아서 제가 대신 전화 걸었거든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른 직원들이 기피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니 그 고객에 대해 연민이 생기기도 했고 어르신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자신도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기도 있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고객을 나에게만은 좋은 고객으로 들겠다는 오기. 냄새? 물론 많이 났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났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코가 마비됐는지 나름대로 괜찮았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 나 명함 하나만 줘요. 무슨 일 있으면 물어볼게."

 "여기 있어요. 고객님. 언제든지 궁금한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이후에도 그 어르신은 몇 번이고 은행을 방문해서 나에게 일을 보고 가셨다. 나중에는 소리도 지르지 않으셨고 번호표도 뽑아 순서를 기다리셨다. 대신, 번호표를 뽑은 후 순번이 되어 다른 직원이 자기를 불러도 가지 않았다. 내가 처리하던 고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직 나에게서만 업무를 처리하셨다. 심지어 내가 인사이동으로 인해 다른 지점으로 이동을 해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나에게 항상 전화를 했고 이동한 지점으로 찾아오기까지 하셨다. 항상 같은 옷에 얼룩덜룩한 그 앞치마하시고 말이다. 그래도 항상 일을 끝내고 나면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정말 고맙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한 번은 추운 겨울날 지나가다 들렸다며 붕어빵을 사다 주기도 하셨다. 나 또한 우리 할머니를 대하듯 진심으로 그 고객을 대했고 매번 밝은 미소로 응대했다. 예금을 하시면 만기 날짜도 챙겨놓고 만기가 가까워질 즈음 꼭 연락드렸다. 주위 직원들은 그 고객을 내 팬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고객이 생겼다.


 흰 눈이 내리던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신년 인사를 나누다 보니 금세 구정이 다가왔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나는 퇴근하고 마트에 들러 배 한 박스를 샀다. 설을 맞아 나의 첫 고객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 한 박스를 예쁘게 포장해서 고객님께 미리 연락을 하고 알려주신 주소로 찾아갔다. 객장에서는 자주 만났지만 내가 고객의 집으로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새삼 떨렸다. 차로 30분 정도 갔을까. 내비게이션으로부터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를 들었다. 퇴근하고 간 터라 어둑어둑해서 그런지 집으로 보일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고객님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 끝을 찔러왔다. 양쪽에 무언가 더미들이 높고 길게 쌓여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간판이 하나 붙어있었다.

 "폐기물 처리 전문"

 고객님께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

 "응, 안쪽으로 쭉 들어와!"

 양쪽에 쌓인 각종 폐기물을 가로질러 가니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보였다. 그곳에 객님이 나와계셨다.

 "여기 앉아 여기."

 부서진 책상, 휘어진 행거, 버려진 냉장고 등 각종 폐기물 사이에 멀쩡해 보이는 의자 하나가 있었다. 고객님은 장갑 낀 손으로 의자를 털어내더니 나를 거기에 앉히셨다. 그리고 당신은 땅바닥에 앉으셨다. 아마 의자가 하나인 것 같았다. 아무리 앉으라고는 하셨지만 어르신을 바닥에 앉게 하고 내가 의자에 앉을 수는 없어서 이내 다시 일어났다. 의자 위에나 옆에는 어떠한 가림막도 없어 찬바람이 매섭게 스쳐갔다. 의자 뒤로 보이는 컨테이너는 고객님의 집이었는데 문이 따로 없어 비닐 천막 같은 것으로 앞을 가려놓았다.

 "추운데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나와계신 거죠."

 손을 잡으니 차를 타고 온 내 손보다도 고객님의 손은 차가웠다. 두 볼은 동상 때문에 빨갛게 돼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아니야. 이렇게 와주니 고맙지. 안에도 지저분하고 별로 안 따뜻해서 여기 밖이 차라리 나아."

 "이거 설 선물이에요."

 "아이고 왜 이런 걸 사 왔어!"

 "드시라고 사 왔죠. 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녀분들은 내일쯤 오실까요?"

 "글쎄 올해는 오려나. 다들 자기들 살기 바쁘지 뭐"

추운 날씨였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추운 줄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고객님, 저 이제 가볼게요. 연휴 잘 보내시고 다음에 또 필요하신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응, 알겠어. 이거 가져가."

 고객님이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아녜요. 저 이거 안 받아요."

 "아니야, 어른이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어두워서 뭔지 정확히는 못 봤지만 돈인 것 같았다. 안 받겠다고 학을 떼며 손사래 쳤지만 고객님은 기어코 움켜쥔 주먹 속에 있는 무언가를 내게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서 폐기물 더미를 지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차에 앉아 손을 펴 고객님이 주신 것을 살펴보았다. 내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오만 원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돈에서는 그 어르신 특유의 냄새가 다. 고객님께 과일을 선물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게 돼버렸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무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차 안에서 출발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새로운 지점에서 한참을 정신없이 보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주어진 실적 채우랴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고객 얘기가 나왔다.

 "요즘 그분 안 오시네?"

 "누구요?"

 "왜 있잖아. 너 팬! 가끔 붕어빵도 사주시던."

 생각해 보니 그 고객님으로부터 전화 온 지도 꽤 됐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설 전에 내가 찾아뵌 게 마지막이었다. 연락도 안 주시고 찾아오지도 않으시고.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다. 업무를 마치고 남아 고객님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응? 번호를 바꾸셨나? 그럼 알려주셔야 하는데?'

 핸드폰을 바꾸면서 연락처도 지워져 연락을 못 하신 건가 싶었다. 그래도 괜찮다. 예금이 만기가 되면 어차피 알려드려야 하니 그때 직접 찾아가 안부도 여쭙고 바뀐 번호도 여쭈면 되겠다 싶었다.

 다음날 출근해 그 고객님께 예금 만기 안내를 하기 위해 만기 날짜를 조회했다.

 "사망자"

 근래 들어 그렇게까지 놀랐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너무 놀라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돌아가셨다니...... 말도 안 된다. 고객님의 그 냄새가 아직도 생생한데. 내 손에 쥐어주시던 붕어빵의 온기가 여전한데. 꼬깃꼬깃 접은 돈을 보고 너무 죄송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말이다. 이내 '사망자'라고 적혀있는 화면이 뿌옇게 보였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렇게 나의 첫 고객님을 가슴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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