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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Nov 28. 2016

내가 꽃과 붓을 든 이유

생성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해체하기

요 근래 꽃꽂이와 명화 컬러링북에 재미를 붙였다. 두 작업의 유사성을 찾으라면 제법 많은 요소들을 갖다 댈 수 있겠지만 그런 유사성을 차치하고 그 두 가지의 일에 내가 동시적으로 흥미를 느낀 것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작용이었을 뿐, 그 무언가가 특별히 함의된 행위는 아니었다.


꽃과 물감은 분명 일상성에 많은 파동을 만들어내는 물건들이다. 그것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일상성은 쉬이 무너진다. 처음 내가 꽃과 물감을 손에 쥐었을 땐, 그러한 속성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려서였는지도 모른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랄까. 분명 그것은 글쓰기와는 또 다른 작용을 만들어냈다. 꽃이 손에 닿는 감촉부터 익숙하지 않은 붓터치의 어려움까지, 하루를 꽃꽂이와 명화 컬러링북으로 보내고 나면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했던 충만한 감정들이 내 안을 가득 메운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감정의 작용들이 나를 꽃꽂이와 명화 컬러링북 앞으로 매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이 취미활동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오브제의 이면'을 직접 해체하고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반 고흐의 <밤의 테라스>. 넘버링에 따라 색을 채우는 단순 작업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시간을 요한다.


명화 컬러링북에 채색을 직접 해보기 전까지 명화는 그저 모든 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하나의 오브제로서 나에게 작용할 뿐이었다. 하지만 직접 그것의 맨살을 마주하고 하나씩 채색하는 작업을 하고 나니,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고흐는 여기서 이런 색을 사용했을까?", "단순해 보였던 밤하늘이 이처럼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것이었구나!" 그렇게 컬러링을 진행하면 할수록 한 개의 그림이었던 오브제는 수십 개의 색으로 해체되고, 그 색의 사용법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수 만 가지의 가능성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그 결과, 명화에 대한 이해도와 흥미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처럼 놀라운 경험은 꽃꽂이를 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전에 마주했던 꽃다발(혹은 부케)은 모두 완성된 모습이었다. 내가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개입하는 부분은 오직 원하는 가격대, 받는 사람, 주는 목적 등의 꽃다발이 생성되어야 하는 근거나 방향성일 뿐, 물리적인 개입은 일절 하지 않았고,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꽃다발은 어떤 꽃, 몇 송이의 꽃이 들어가든 내 손에 쥐어졌을 때, 그저 하나의 꽃다발이 되었고 그것의 가치는 내가 플로리스트에게 말했던 가격대로 매겨졌다. 하지만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는 모든 꽃을 대할 때 수많은 느낌표와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저 꽃은 처음 보는 소재인데 이름이 뭘까?", "와 저 꽃을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포장을 저렇게 하니 색다른 느낌을 주네!" 단언컨대, 내가 직접 꽃꽂이를 하면서 꽃다발의 해체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이처럼 꽃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꽃을 조화롭게 엮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선천적인 센스에 의지할 수 없는 제법 고차원적인 작업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늘 소위 완성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내가 앞서 예시로 든 명화, 꽃다발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늘 완성된 모습만 보여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물질뿐만 아니라 모든 정형화된 아이디어도 마찬가지). 완성된 것들은 마침표를 찍고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면을 쉬이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의 이면을 보기 위해선 직접 해체해보는 수밖에 없다. 해체는 생성을 이해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체를 잘하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생성도 잘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해체하는 습관을 들이면 삶의 곳곳에 마침표 대신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이 되어 흡사 핵분열과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남이 해체해준 것을 습득하겠다는 안일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무조건 직접 해봐야 한다. 해체하는 방법 역시 남이 한 것은 완성된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완성된 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우리의 사고를 협소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땐 먼저 해체를 해보자. 해체를 하는 사이사이의 호흡에서 놀라운 영감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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