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 그것은 우리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당기기도 하고 혹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열등감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르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영화 <록키>에서는 열등감이라는 속성을 기저에 둔 세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열등감에 대한 다양한 양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폴리는 도축업자여서 매일 몸에서 동물의 피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매일 술통에 빠져서 사는데 그의 열등감 극복 방법은 여동생에게 화를 냄으로써 우월감을 맛보는 것입니다.
애드리안은 그녀의 오빠가 매일 그녀에게 '패배자'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내면에는 열등감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애드리안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이 밖으로 드러날 만한 상황을 미리 통제해 버립니다.
록키는 무명 복서입니다. 복서로서 이렇다 할 전적도 없기에 고리대금 업체 하수인이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의 열등감 극복 방법은 늘 스스로 자신이 멋진 복서라며 떠들고 다님으로써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숨기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약자에게 화를 내고, 만남을 기피하고, 허세를 부리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봐왔던, 또 우리 스스로가 보여주기도 했던 모습들이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이처럼 대개 누군가의 삶을 찌질하고 구차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대체 왜 이런 쓸모없는 감정이 생겨나는 걸까요?
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이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심리학자 아들러(Alfred Adler)가 개인의 삶에 있어 열등감과 보상을 강조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아들러는 생활양식의 근본을 결정하는 것으로 열등감을 꼽았습니다. 아들러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는 인간이 현재보다 나은 상태인 완전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평가하는 본능을 지녔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인간은 각자가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아들러의 말을 통해 열등감은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며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록키>의 세 캐릭터가 열등감을 대하는 방식은 해결책(극복)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가까워 보입니다. 매번 열등감이 발현될 때마다 완전히 그것을 마주하고 해소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데만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열등감이다." (윤태호 작가)
반면에 <미생>을 만든 윤태호 작가의 열등감 극복방식은 아들러의 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입시 실패 후 성공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자신을 동창회에 초대하지도 않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며 25살을 넘기기 전에 만화가로 데뷔한다는 독한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25살에 만화가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작품을 연재하면서 그는 다시 큰 열등감에 빠졌는데, 그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스토리가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후로 모든 연재 요청을 거절하고 시나리오 글쓰기 공부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시나리오에 대한 열등감까지 극복하면서 <미생>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열등감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고 돌아가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아주 훌륭한 이정표일지도 모릅니다. 윤태호 작가가 대입에 실패했을 때 그리고 작가로서 시나리오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낀 열등감을 외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면 <미생>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면하지 않았고 묵묵히 열등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당당하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덧붙여 앞서 언급했던 <록키>의 세 캐릭터는 영화가 끝날 즈음에 열등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애드리안은 록키와의 사랑을 통해서 열등감을 극복하고, 록키는 챔피언과의 경기에서 15라운드까지 K.O 당하지 않고 견딤으로써 열등감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리는 그의 도축업체 로고가 록키의 가운 등판에 광고로 부착되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봄으로써 열등감을 극복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도축업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의 가치가 올라감으로써 자신의 자존감 또한 높아졌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애드리안은 만남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록키는 챔피언과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폴리는 자신이 치부라 여겼던 것을 온 세상에 드러냈기 때문에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즉, 그들도 윤태호 작가처럼 열등감을 당당히 마주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열등감 때문에 괴롭다면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 보세요. 열등감은 마주 봐야 비로소 길을 알려주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