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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는 누구일까?

by 강센느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나다운 게 뭔데?"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이 대사를 들을 때면 저는 고민에 빠집니다.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나를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닌 세계와 타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나'는 혼자로서 그 어떤 존재적 가치를 가지기보다는 타자에 의해 어떻게 호명되는지에 따라서 존재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정체성>이라는 작품에서 알튀세르와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

<정체성>, 밀란 쿤데라 저


엄마 앞에서는 착실한 아들, 친구들 앞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친구, 선생님 앞에서는 모범적인 학생. 정말 루이 알튀세르의 말처럼 '나'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일까요? 나의 정체성은 남에 의해 좌우되는 걸까요?


헝가리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는 알튀세르와 다르게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주체를 바라봤습니다. 그는 반인간주의적 관점에서 주체가 구조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고 주장했던 알튀세르와 달리 주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러면서도 인간 개개인의 신념이 확고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자아라는 게 도대체 뭐죠?" 베로니카가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모두가 그 말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중략) 남자는 느닷없는 질문에 놀란 것 같았지만 곧 대답했다.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저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자신의 작품에서 루카치와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진짜 나'라는 말을 통해서 말이죠.


세상 속의 '나'

내 생각의 '나'

무엇이 진짜일까요?


알튀세르의 말처럼 분명히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와 소통하느냐 에 따라서 '나'의 정체성이 조금씩 변화를 가지게 됨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 행위자인 '나'는 물질적으로 변함없이 세계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루카치의 말에도 공감이 됩니다.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다르게 '나'를 호명한다고 해서 실재하는 '나'의 존재가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호명하는 것만으로 정의내릴 수 없게 됩니다.


결국엔 어떻게 호명되느냐, 남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에 대해서 눈치를 보기보다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즉, 무엇이 진짜 '나'일까 고민하지 말고 모든 모습이 '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죠.


그리하여 누군가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묻는다면 "이것도 나다운 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면 뿌리 깊은 나무처럼 견고하게 '나'의 뿌리를 세상에 내리고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인문학 짝짓기

<정체성>, 밀란 쿤데라 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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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