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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걷기 생활

1일1생각 #52

by 강센느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는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도보로 30분 이내 거리라면 걷는 쪽을 택한다. 차를 탔을 때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이 1이라면 걸을 때는 10 이상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걷는 사람은 풍경뿐만 아니라 거리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더 오랫동안 싱싱한 기억으로 남는다.


해방촌을 걷다가 발견한 풍경


그리고 가끔은 집 주변도 목적지 없이 걷는다. 그러다 보면 동네에서 새로운 풍경들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2년 정도 살던 집을 떠나기 일주일 전, 문득 걷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집 주변을 걸었다가 2년간 모르고 지냈던 예쁜 카페를 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집 주변을 빠삭하게 익히고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그렇게 이사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그 동네는 다시 낯선 공간이 됐다.


걷다가 발견했던 생경한 풍경의 거리


아마도 그날 이후로 집 주변을 걷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여행지만큼 낯설고 설레는 풍경들이 등잔 밑처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말이다.


매일 버스,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 우리의 감각은 그 속도에 맞춰져서 평균 시속 50km 이상의 풍경만 기억에 남기게 된다. 하지만 틈틈이 걷기를 통해 감각의 속도를 낮춰주면 그만큼 느리고, 세밀한 풍경들을 기억에 남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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