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떤 두려움
시간을 갖자고 해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연락부터 서서히 트기 마련인데, 우리 사이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서로의 존재를 잊은 것이 아니라 같이 보냈던 시간들을 잊은 듯이 누구 하나 먼저 문자 한 통 보내는 일이 없었다.
굳이 어느 한쪽이 선언하지 않아도, 소통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이별이라는 상태로 연장되었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이런 이별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고, 각자가 알게 모르게 짐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그녀의 아버지와 처음 진지하게 대면했을 때부터 이든, 혹은 내가 그녀의 통화를 우연히 엿들었던 때부터 이든, 아니 어쩌면 같은 처지이던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원했을 때부터였을지도...
우리는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 예기된 이별을 한 것일지 모른다.
예기라는 단어의 정의가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하여 미리 생각하고 기다림'이라고 한다면, 우리 관계의 끝은 실로 그녀와 나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예기되던 것이 맞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을 채우는 헛헛함과 싸워 나가야만 했다.
"재윤아. 니가 이 애비를 보고 어떤 마음을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언제가 됐든 결혼은 꼭 해라."
3일의 추위와 4일의 선선함이 교대로 오가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그녀를 잊는 데에 여념이 없던 나에게 우리 아버지가 해준 말이다. 정말 타이밍이 절묘했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조촐한 술상이 놓여 있었고, 뜨끈하게 데워진 정종이 각자의 잔에서 김을 올리고 있었다.
"할 때 되면 하겠죠, 뭐."
나름 무심하게 말한다고 한 건데 잘 표현이 됐는지 모르겠다.
다만, 먼저 술잔을 꺾은 아버지의 날숨 소리가 다소 침중 했다. 그 이유를 나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직장이 타 지역이라 독립해서 살지, 이전까지는 나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나는 제법 클 만큼 컸을 때 부모님의 이혼 과정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아니, 목도했다는 말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두 분의 이혼은 내가 직접 이끌어낸 것이었으므로...
뻔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기를 자꾸 꺼리게 되는 데에는 기실 그 이혼 과정의 목도라는 것이 큰 원인이 되었다.
차라리 아버지나 어머니, 둘 중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야기된 결과가 이혼이라면, 나도 그토록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망설이면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 두 분 중 그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었다.
누구 한 사람이 외도를 하지도 않았고, 가정에 소홀하지도 않았으며, 집안의 우환거리를 불러들이지도 않았다.
그냥 두 사람은 서로 잘 맞지 않았다.
'그냥 서로 잘 안 맞아서 갈라섰어요.'
복잡한 이혼사를 무난하게 얼버무리기 위해 으레 하는 말이 우리 집에서 실제가 될 줄 몰랐다.
물론 집안에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심신의 여유라는 게 없었다. 굳이 찾자면 그뿐인 정도의,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그런 문제였다.
그 와중에 이따금씩 두 분의 다툼을 볼 때마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살벌했다.
정말 단어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살벌함, 오직 그 단어만이 둘 사이의 기류를 완벽하게 수식할 수 있다.
싸움의 주제는 언제나 사소했다. 아니, 사소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렇지, 서로에게 보이는 몸짓, 드러내는 눈빛까지도 충돌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이지 이러고 사는데 어떻게 서로 좋아서 결혼까지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대학생이 되고서는 타지로 나가 기숙사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집에 들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때에도 나는 두 분 사이에서 특별히 큰 삐걱임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 후에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살 무렵부터 잦은 이질감, '집안 분위기가 왜 이 모양이지?'라는 불안함을 느꼈던 걸 생각하면 내가 밖에서 살던 시간들의 어느 한 지점에서부터 두 분만 알 수 있는 균열은 발생해 있었을 것 같다.
그 균열이 몇 달이 지나도록 메워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나름의 노력을 시도했다.
그러나 잠시 성과가 있는 듯하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자 정말 이게 맞는가 싶었다. 그렇게 또 몇 해가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참고 산다', 이 말이 결혼해서 서로 맞춰가며 산다라는 태도의 상위호환 격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 힘든 태도이고, 더 싫은 태도이고, 더 무거운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집 근처에 아는 형이 개업한 안마원에 취업해 1년 계약을 맺고 일을 했다.
다행히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곧잘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치료실 안에서 금방 신임받는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이대로면 공무원 시험에 몇 번 떨어져도 내 밥줄은 안 끊기겠구나 싶었다.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조금 성숙한 나이, 꾸준히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적당한 능력, 내가 이 두 가지를 갖추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 어떤 날,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놓아줄 수 있도록 직접 돕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 후, 사이드브레이크가 풀린 차를 뒤에서 억지로 밀어 옮기듯, 두 분 사이의 관계는 꾸역꾸역 정리되었다.
내가 결혼이라고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것은 그 뒤였다.
부모님 중 누구와 같이 살아도 앞으로 내 마음 편하기에는 글렀다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일하던 안마원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들어가 다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이듬해에 공무원 시험 합격을 맞았다.
따로 나와 살면서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찾아가며 내 안부도 알리고 서로의 근황도 전했다. 아버지를 만났을 때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머니를 만났을 때에는 또 그 반대로...
굳이 갈라선 타인의 소식을 듣는 것에 역정을 낼 줄만 알았던 내 우려와 달리 두 분이 서로의 소식을 접하는 태도에는 뭔지 모를 아련함이 있었다.
"다행이네."
양쪽의 소식을 전하던 내가 매번 듣는 말이었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제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다시 만나고 간섭하지 않을 것이기에 오히려 더 잘 살았으면 한다고, 건강하게 지낸다 하니, 나름 행복하게 산다 하니 다행이라고...
피차 완전한 타인이고 싶었던 내 부모님은 그렇게 갈라지고 나서야 애틋한 지인이 되었다.
거리를 두어야만 비로소 애틋해질 수 있는 그런 사이도 있는 걸까? 나라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내가 평생토록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이혼조차 직접 종용한 내가...
"은하하고는 이제 안 만나냐?"
그냥 떠보시는 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한 번씩 아버지와 마주할 때마다 은하 얘기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녀와 헤어지는지 어쩌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은 기억은 없다.
"좀, 그렇게 됐어요."
애써 숨길 것도 아니다 싶어 대충 밝혔다.
"한 번 헐겁게 잡은 인연의 실은 미풍만 스쳐도 나도 몰래 놓게 되는 법이다."
아! 우리 아버지. 혼자 사시더니만 시인이 다 되셨다. 그 뜻이 깊고 함축적이어서 차마 본질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헐겁게 잡는다는 게 뭔데요?"
그걸 또 콕 집어서 묻고 앉아 있었으니, 내 감성도 아버지를 닮았었던 게 아닐까?
"언젠가 놓을 걸 생각하고 잡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좋겠구나."
이 말에는 나도 아차 싶었다.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방점을 찍었던 키워드는 예기됨이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는 작금의 우리 모습이 각자가 모르는 사이에 품게 된 불길한 예측을 맞닥뜨린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언젠가 놓을 걸 생각하고 잡지는 않았느냐라...
처음부터 정해진 이별 결말을 맨 뒷장에 두고 그 앞에 예쁜 표지와 빛나는 낱장들을 쌓아 올렸던 건 아닌지 반추해 보았다. 아프게도 그게 맞았다.
"다음에는 안 그럴 수 있겠니?"
순간적으로 자각한 나 자신의 이중성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다시 물어 왔다. 아무래도 내 심리 상태가 표정으로 확 드러난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안 그럴 수 있을까? 다음 사랑을 할 때에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저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없다. 결론은 없다. 이대로 다음을 기약해서야 나는 또다시 같은 우를 범할 뿐이다.
단 한 번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본 적이 없는데, 그게 어떤 것인 줄 알고 더 나은 다음을 다짐한단 말인가?
'내일 만날 수 있어?'
정종이 도수가 몇 도더라? 분명 소주보다는 낮았던 것 같은데, 고작 그거 몇 잔 마시고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이튿날 해가 서서히 떠오를 무렵,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간밤에 내가 저질러 놓은 참사를 보고 말을 잃었다.
잠시 시간을 갖자는 그녀의 말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것이 벌써 한 달 반이나 흘렀다.
그러다 정확히 48일째 되는 밤에 내가 그녀에게 보낸 문자 한 통이 저거다.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새벽에 술김에 보내는 토속적인 문자로 '지금 자니?'가 있긴 하지만, 그때 우리 상황에서는 오히려 내가 질러버린 한 통의 문자가 그것보다 더 질이 나빴다.
'지금 자니?'는 그나마 읽고 씹겠거니 생각할 수라도 있지, 당장 내일 보자는 문자에는 어떤 답이 올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빨리 메시지를 삭제해서 못 보게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허사였다. 이미 읽음 표시로 바뀌어 있었다.
상대가 문자를 읽었다면 지우는 방법도 없지만, 지워봐야 무쓸모다.
'내일 볼 수 있어?'
한겨울 대낮에 폭포수 같은 땀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명치 어름을 짓누르는 답답함, 이유 없이 쓰라린 가슴께, 아랫배와 골반을 울리는 요사스러운 진동, 그치지 않고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
숙취도 아니고 병도 아닌 원인 불명의 증상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들었다 놨다 하던 나는 어느 순간 손아귀를 간질이는 짧은 떨림을 느끼고 대경실색했다.
마치 높은 곳에서 누가 나를 밀어 떨어뜨린 것마냥 아찔한 감각이 엄습했다.
땀줄기가 등골을 훑는 감각이 너무나 선명해 소름이 돋았다. 거친 열감이 치고 오르며 전신을 후끈하게 데웠다.
그녀로부터 온 답장을 확인한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내일 볼 수 있냐고? 정말?
뭐라고 답을 보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기억은 과도한 술기운에 억눌려 이미 손 닿지 못할 무의식으로 침전한 상태였다.
그 위로 겨우 남은 거라고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완전히 충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에 대한 후회와 그녀에 대한 미안함, 그것을 느끼며 괴로워했던 간밤의 기억뿐이었다.
도대체 그 뒤로 무슨 답을 내렸길래 함부로 금단의 스위치를 눌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 고마워.'
결국 보냈다. 그제서야 나는 맨 정신으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다시 그녀를 만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