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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n 25. 2020

인간의 이용가치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읽어 온 수 많은 책 속의 메시지였다. 그럼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귀어야 할까? 철딱서니 없는 나는 늘 맑은 영혼 하나만을 본다고 주장해 왔다. 굳이 입을 열어 누군가에게 말을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생활이 궁핍해도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럼 오글거리는 말, 영혼이 맑다는 것은 뭘까?    


아름다움을 쉽게 느끼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민이 많고, 주어진 것에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 더 많은 설명과 수식을 할 수 있겠지만 뭐 그 정도로 해 두자. 한 마디로 좋은 사람이다.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정한 이타적인 사람도 포함된다. 내가 그런 사람을 바라는 만큼 나도 그런 사람이길 바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기 쉽다. 물론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표현방법도 다 다르다.    


드라마 스터디를 두 번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궁금해서 참여했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할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어딜 가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몇 번 참여하다 그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생각해서 슬쩍 빠졌다. 지금 하는 스터디는 지난 드라마반 기수의 반장이 하자고 해서 의리로 참여하고 있다. 반장의 취향으로 모은 사람들과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을 읽고 돌아가며 정리 발표한다. 1990년도부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은 영화를 구조 분석한다. 자신의 드라마를 합평 받는다.    


스터디 내용은 신인 연극상을 받은 연출가 출신답게 알차게 준비했다. 어제가 3번째였다. 문제는 스터디를 모은 반장이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참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의 스터디 참여 이유의 50%가 없어졌다. 나머지 50%는 남은 멤버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책이야 혼자 읽고 정리하면 그뿐이고 영화는 늘 물리도록 보고 있다. 성격상 남의 작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인간, 모인 멤버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내가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단 하나다! 영혼이 맑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왜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에 하는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종종 너는 왜 남의 이야기를 끊고 질문을 하니? 라는 말을 듣는다. 궁금해서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만 듣는 게 아니라 더 듣고 싶어서다. 내가 원하는 인간의 이용가치는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권위나 경제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지금의 생각과 그래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이용가치가 있다. 돈 자랑이나 남편, 자식자랑도 서너 번은 들어 줄 수 있다. 결국 그렇게 되도록 희생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만날 수가 없다. 책이나 영화가 더 재미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마무리를 하자면, 어제 내 이야기를 무시하는 어떤 동기가 있어 화가 나고 계속 생각하고 있고 이제 같이 놀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뭐 좀 길다고 느껴도 들어주면 안 되냐?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없다고 느껴도 무시 안 하면 안 되냐?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늙었다고 싫어할까봐 밥도 사주고 차도 갖다 주고 했는데! 잘해주는 것이 굽실거리는 걸로 느끼는 거 아주 나쁜 짓이야! 너는 아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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