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설명회에 몇 명 오지 않자 학원 측에서는 전화번호를 주며 일일이 전화를 하여 상담을 하라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라 황당하기만 하다. 에? 제가 직접 전화를 한다고요? 왜요? 설명회 때, 일 때문에 참석 못 하신 어머님들이 선생님과 직접 통화를 하시기를 원하셨어요. 요즘 어머니들 다 일하시잖아요. 아, 네... 그렇군요. 뭐라 더 대꾸할 여력도 이유도 없다. 저기 강의실에서 하시고 이 차트는 돌려주시고 가세요. 네... 꼼짝없이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번호를 누른다. 나란 인간은 보기와는 다르게 낯도 조금 가리는 편이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불쑥 전화를 하는 일 따위는 해 보지 않았다.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학원 측 말을 그대로 믿어서 했다가 망신이나 당하지는 않을까?
신호가 가자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난 모르는 번호가 뜨면 받지 않는다. 다른 차 앞에 주차했을 때만 받고 그 이외에는 잘 받지 않는다. 꼭 연락이 필요한 사람은 문자를 남기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예쁜 목소리의 여성분! 아 여보세요. 갑자기 전화를 드려 죄송한데 저는 **학원의 일본어 강사인데요, 학원에서 전화를 하라고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주시다니요! 영광입니다. 다행이다. 이런 반응이면 나쁘지 않다. 학원에서 준 번호는 총 10곳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니 지루하기도 하고 성의가 없어져 간다. 방법을 바꾸자. 내 쪽에서 질문을 하자.
이미 동영상을 보았다는 어머니도 있고, 선배를 통해 소개를 받았다는 분도 있다. 생판 초면인 사람은 새로운 마음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중학교 때는 주로 중국어를 했다는 학생이 많다. 한때 중국어 광풍이 불었었다. 모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일본어를 폐지하고 중국어로 제2 외국어를 갈아탄 학교도 꽤 있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불과 6, 7년 전이다. 그러나 한한령으로 중국어 붐은 싸늘하게 식었다. 일본도 혐한은 마찬가지이나 역사적인 애증의 관계라서 인지 다시 일본어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중국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다 한자라고 한다. 아아... 한자요? 일본어도 한자는 해야 하는데요. 2천 자 정도는 알아야 제대로 된 일본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도 80%가 한자 단어라는데 한자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는 일본 여행을 한 번 갔다 오더니 일본이라는 나라에 빠졌습니다. 일본이 좋다고 해요. 깨끗하고 친절하고! 네 그러시군요.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요?
제 아이는 일본 문학을 좋아합니다. 일본 소설만 읽고 있어요. 굉장히 반가우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지만, 일단은 칭찬으로 대답한다. 오 대단하네요. 책을 안 읽는 요즘 애들 속에서 책을 좋아한다니 바람직한 친구네요! 어떤 소설가를 좋아하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말기를 바랐으나 역시나였다. 그래도 자녀의 기호를 긍정적인 사인으로 받아들이는 훌륭한 어머니들이어서 전화 설명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통화를 한 분들은 보내시겠지?라는 단전에서 치밀어 오는 뭔가가 있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코로나 시국이 아닌가! 다 어렵고도 힘든 시절이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