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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Feb 09. 2022

전화 설명 상담 2

오지랖의 시작인 카풀


한 학원이 끝나자 다른 학원도 전화번호를 준다. 다들 하는 일들이 어찌 이리 비슷할까? 올해부터는 찾아가는 서비스가 당연함이 되었나 보다. 나이가 드니 여러 가지로 젊은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어디 모임을 나가기도 그렇고 무슨 의견을 말하기도 그렇다. 혹시 요즘 추세에 맞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서 학원에서 시키는 일은 토 달지 말고 하기로 했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하니 술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일본어 강사인데요, 뭐 궁금하신 거 없으신가요? 어머! 선생님, 직접 전화를 주시고 고맙습니다. 근데 우리 애는 집이 좀 멀어서 그런데 줌 수업으로 하면 안 될까요? 어디신데요? 반포 ** 아파트인데요... 아 그럼 제가 학원에 가는 길이니 갈 때 태우고 갈까요? 또 시작이다! 이 오지랖! 줌 수업으로 하면 말하기가 잘 들리지 않아 대면 수업을 권장드립니다.     


보통 어머니 같으면 뭔 이상한 선생도 다 있다고 거절할 텐데 쉽게 납득하고 선뜻 귀한 딸을 동행하라고 허락한다. 진심이긴 했지만 거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솔직히 반반이었다. 옛날 사람인 나는 같은 거리라면 같이 타고 가는 것이 항상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잘 태워 준다. 몇십 킬로나 되는 가방을 메고 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파 가는 길이 비슷하면 일단 타라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친구 엄마 정도로 여기는 거 같다. 만난 적도 없는 어머니가 오케이를 한 일은 처음이라 놀라웠다. 만나기로 한 전날까지 연락이 없어 역시 아닌가 했다. 그러나, 개강 당일 새벽에 문자가 와 있다. 혹시 마음이 변하지 않으셨으면 우리 애 동승할 수 있을까요?      


만나기로 한 날은 영하 10도 정도의 추운 날 아침, 9시 반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늘 설레고 불안하다. 너무 일찍 가서 그 동네를 두 바퀴나 돌았다. 20분쯤 되니 모녀로 보이는 이들이 있어 맞지 싶어 다가갔다. 내 차 번호를 미리 알려 주었다. 젊고 깔끔한 눈매의 어머니와 꽁꽁 싸맨 여자 아이! 아이만 태우고 어색함 속에서 첫인사를 했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총명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소설을 쓰고 있고 책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가 많은데 전혀 어색함이나 주눅 듦이 없다. 학생회장을 하라고 해도 할 거 같은 용맹함과 지혜로움이 있는 아이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또 이렇게 영재를 만나서 내 인지도와 명성에 보탬이 되겠구나 싶다. 어머니도 일하시니?라고 묻자 시원시원하게 네, 부모님 두 분 다 변호사이세요. 한다. 역시! 고수들은 다르다. 척하면 척이다.      


영재인 S와 카풀을 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물론 혼자 갈 때보다는 성가시고 신경도 많이 쓰인다. 아이는 내 예상대로 최상위권을 할 거 같은 학생이다. 가르치는 보람을 많이 느끼게 해 주는 기특하고 고마운 학생이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요즘은 단어 시험을 보거나 졸거나 한다. 그만큼 내가 편해진 모양이다. 가르치는 일을 한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10년마다 고비가 찾아왔었다. 지루하고 비루하고 초라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았다면 더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헝그리 정신으로 버티면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젊게 사는 방법은 참 쉽다. 결핍이다. 경제적인 결핍과 정신적인 결핍이 어우러져 계속 젊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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