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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Feb 13. 2022

생일 파티

     

학생들에게 일일이 생일 선물을 주지는 못하지만, 수업 당일인 학생이 있으면 케이크를 사서 노래는 같이 부른다. 당일이 아니라도 하루 이틀 상간이면 의기투합도 할 겸, 삭막한 학원 생활에 추억거리도 만들 겸 단출한 생일 파티를 한다. 올해의 첫 주인공은 Y였다. Y는 대치동에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곳에 산다. 1월에는 집 근처 학원을 다니다가 주요 과목을 대치동으로 옮기면서 일본어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큰 학원에서 밤에 전화를 하라고 문자가 온다. 이래저래 하니 상담이 급하다고. 운전을 하다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했다. 처음 통화를 하는데 나만큼 황당하고 재미있는 어머니였다. 한 달 동안 어떻게 했냐고 묻자 전혀 공부를 안 하는 거 같았다고 한다. 집이 먼데 어떻게 다니냐고 하니 지가 알아서 전철 타고 다닐 거라고 한다. 잘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니 지도 정신 차려야 하니 잘 되었다고 한다.     


첫 수업 때, 나타난 Y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예쁘게 생긴 고상한 소녀였다. 어디다 내놓아도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은 그런 이미지여서 놀랐다. 어머니가 말하던 정신 나간 느낌은 어디에도 없고 영화 클래식의 주인공 같은 그런 소녀! 나 역시도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되고 싶은 그런 소녀! 그래서인지 유독 그 학생에게 난 약하다. 말도 상냥하게 하고 일부러 보강도 일대일을 많이 해 주게 된다. 차별을 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만다. 그런 학생이 생일이란다. 수업을 하다 말고 서둘러 앱에서 검색을 한다. 케이크는 평범하니까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한다. 아이들도 들뜨고 나 역시도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처럼 들뜬다.      


주문을 한 지 20분 지나자 전화가 걸려 온다. 여기 왔는데 어디죠? 네? 어디에 오셨다는 건가요? 여기 **빌딩 2층 아닌가요? 정신을 차리고 앱을 열어 보니 전의 학원 주소로 되어 있다. 황급히 문자를 보낸다. 죄송한데 주소를 확인을 안 했는데 다시 이 주소로 배달해 주시면 수수료를 더 지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전화가 걸려 온다. 불쾌해진 목소리다. 오전부터 진상 손님이 되어 버렸다. 죄송하다고 여러 번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왔다는 문자가 오고 시간 관계상 학원 앞에 나와 달라고 한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한걸음에 달려 나간다. 하얀 차가 내 앞에 서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분이 의외로 웃으며 건네준다. 재차 사과를 하고 계좌번호를 달라고 하며 헤어졌다.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서 다시 문자를 하자, 뜻밖에 답이 돌아온다. 「저도 아들이 있어서요, 아이들에게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멍~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젊은 사람이 이렇게 훌륭할 수가!! 이 문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자식에 대한 올바른 사랑과 이타심과 진정한 어른의 모습까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예의와 교양이 다 담겨 있다. 오전에 학원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경우에 학생들과 같이 먹을 거라는 것을 전제로 그런 짓을 하는 학원강사라면 나름 인간적일 거라는 통찰까지 담긴 문자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많이 없어도 동질감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험이었다. 그분의 아드님도 좋은 선생님 많이 만나기를 기원한다. 생일이라고 시시덕거리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노래도 부르는 시간이 많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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