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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훈 Dec 06. 2020

알바! 내 인생 성장의 발판

아르바이트로 대기업까지! 나를 성장시키다.

회사 생활을 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많은 경력 사원들도 우리 회사를 드나들고 있고 나도 첫 번째 정규직으로 입사한 회사이지만 이 회사가 처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마지막은 더욱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이 아니라는 말을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해왔다. 우리 시절에 많이들 경험했겠지만 초, 중등 학생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신문배달 그리고 전단을 돌리는 일이 거의 전부였다. 당연히 전문적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일을 시키기에는 한계점이 많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신문 배달이었다. 지금은 벌써 30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은 당시 오래 하지는 않았었던 기억이 난다. 한 달에 1시간가량 일을 하고 1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었다. 신문 부수도 한 100부 정도 돌린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러 나가신 터라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용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터라 신문 배달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크게 나의 인생에 어떠한 일부분이 되기보다는 단지 한 조각의 기억으로 자리 잡혀 있다. 그냥 막연히 큰 비중을 논하기보다는 첫 번째 나의 일이었던 샘이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생활해 나갔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의 몸이 고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내 손으로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는 것이 나의 성격상 맞았던 것이고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이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다. 


수능을 마치고 호프집으로 향하였다. 일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수능을 치르고 나니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호프집에서 일도 하고 아침에서 햄버거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수능 시험 전 신문 배달이나 돼지갈비 같은 단순히 친구들과 놀기 삼아 시작한 아르바이트부터 수능 후 아르바이트까지 단순히 돈이 벌고 싶은 마음에서 그 당시는 일을 했었다. 물론 내부 환경적으로 충분하지 못하였기에 내가 그러한 선택을 한 것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면서 느낀 행복과 무언가 스스로 자립해 나가는 듯한 당시의 자신감은 나 자신에게 지금 나의 인생에 많은 교훈이 되었다. 


실제 나의 아르바이트 인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당시 나의 나이는 23살 초반이었다. 군대 제대 휴가를 나왔을 때부터 바로 놀기보다는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우선순위는 바로 돈이었다. 제대 시점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열정과 나의 건강한 신체 단 2가지였다. 그래서 바로 찾은 곳은 아파트 공사 현장이다. 하루 일당 5만 원, 당시 23살의 나로서는 한 달에 200만 원이라는 돈이 상당히 커 보였다. 분명 쉬운 일도 많을 것이고 놀기 삼아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었지만 나는 단 하나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과 다른 어떠한 일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누구보다 성실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 결과 남들은 천하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는 인정을 받으며 꾸준히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자신감은 내가 귀천을 따지지 않고 어디를 가든 인정을 받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벌었던 돈으로 하고 싶은 옷가지며 먹고 싶은 것이며,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누리며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했으며,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며 지내야겠다는 욕심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며 보상을 받는다는 즐거움!


이후 복학을 하면서 나는 용역 현장에서 번 돈으로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방학 때면 다시 건설 현장을 찾았다. 처음에 열심히 한 것으로 보였는지 이후에도 사무실에서는 공백이 있었지만 나를 환영하였다. 

대학 2학년이 되던 시점, 학교 내에서 입학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당시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하던 업무와는 다르게 상담 그리고 입학 원서 관리, 입학 행사 등 일반 직원들이 하던 업무와 흡사한 업무를 진행하였다. 그래서인지 월급 또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식사, 방학 때 제공된 기숙사 등도 나름 복지 아닌 복지였다. 아울러 학교 내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학업에 대한 열정도 당시 상당했던 것 같다. 이에 학교를 다니면 장학금도 5~6회 정도 수령하여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는 기회가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을 하면서 배우는 즐거움과 그 안에서 공부로 인해 배우는 즐거움 두 가지 모두 가지게 되는 계기였다. 이 시기 학과 생활에도 적극적이었다. 보통 공부에 집중하면 친구들 그리고 캠퍼스의 추억에 대해 놓치기 쉬운데 나는 그것 또한 가져갔다. 이러한 것을 계기로 3학년 때는 학회장을 역임하며 또 다른 내 추억의 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일을 하고 공부하는 기간 중 중간에 나름 비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말이었다. 그 시간을 놓치기 아까워하던 중 대학 선배가 경영하는 주말 농장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하루 일당 7~8만 원으로 용역에서 받던 돈보다 50%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흔쾌히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평일에는 학교 아르바이트와 학업 그리고 학과 생활을 그리고 주말에는 농장에서 서빙 업무를 하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그 금액만큼이나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일한 끝에 나에게 오는 일당은 나의 힘든 몸을 달래 주었다. 


이렇게 대학 생활 중 번 돈으로 사람도 얻고 돈도 얻고 추억도 얻었다. 그리고 당시 집에 조금은 부유해야 살 수 있었던 자가 차량도 내 번 돈으로 가질 수 있었다. 남들은 허세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은 나는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 욕심이라 부르고 싶다. 


긍정적 욕심은 자기 자신을 더욱 성장시킨다. 


이후 나는 단과 학생 회장 선거에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친한 형의 권유로 스키장 샵에서 1 시즌 동안 일을 하였다. 약 3개월 여 기간 동안 무주리조트에서 스키 장비 랜탈과 강습을 하면서 남들은 가질 수 없는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추억과 함께 나는 어디를 가서도 당당하게 스키를 잘 탄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실력과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스키장 생활을 계기로 나는 입사를 위하여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하였고, 스키/스노 보드 동호회를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그런 경험을 만들었다. 


입사가 가까워 오는 시점, 공부에 집중을 하였다. 하지만 공부만 하기에는 나의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에 나는 당시 토익 공부를 병행해야 함에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 학원에 가면 아무래도 영어와 친숙해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한 내 생각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고, 학원을 다니며 고득점은 아니지만은 원서를 낼 수 있는 최소 점인 800대의 토익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글로 풀어 가면서도 나름대로 많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 한편으로는 당시로 돌아가서 그러한 경험을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좋은 경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학교를 못 가서 포기하는 사람, 좋은 직장을 못 가서 포기하는 사람 등등 많지만은 포기라는 단어는 도전으로 메워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계속된 도전과 경험을 통해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젊은 친구들이 포기 없이 긍정적 욕심을 가지고 도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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