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 돈까스?
고민 끝에 합의점으로 이자카야를 갔다. ‘돈까스에 냉모밀’ 조합을 듣자마자 ‘그래, 이거야!’ 하고 꽂혔다.
그런데 나만 돈까스에 냉모밀 세트를 주문하고, 다른 두 분은 카레를 시켰다. 그러자 ‘카레파’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레 좋아하시나요?”
“응. 그래도 집에서 ‘3분 카레’랑 ‘3분 짜장’ 중에 고르라면 역시 짜장이지만.”
“예전에 중국 계셨어서 그런 건가요?”
“중국은 짜장면 안 팔아~ 하얼빈이나 가야 탕수육 비슷하게 꿔바로우 정도 찾지.”
그때였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하얼빈’이라는 단어를 듣자, 어쩐지 반갑고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그 단어는 입안에서 울림을 줬다. 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의 주입식 교육이 남긴 흔적이 분명했다. 중국어 성조를 외우느라 하도 읊조렸더니, 아직도 몇몇 단어는 듣자마자 자동 반사로 발음이 되새겨졌다.
중국어를 공부할 때는 ‘나중에 커서 중국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다. 아무래도 중국어는 기회의 시장을 공략할 열쇠처럼 늘 홍보되었으니까.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남미를 겨냥한 스페인어 홍보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선배가 말하길, 남미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땅이지만, 그 얘기는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물론 외국어는 살면서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는 영어로 사람들이랑 친구도 되고 여행도 다녔다.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공부하는 것도 모두 영어로 하면서 ‘와, 이게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오네?’ 하고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나도 나중에 해외에서 살고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직장을 얻고, 한국에 그대로 눌러앉으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한편으로는 홍콩이든 런던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주의가 굳어져 갔다. 차라리 한국이 치안이든 의료 인프라든 한국인으로서 살기에는 최적이지 않나,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마저 들었다.
그런데 좀 지루했다. 새로운 세상과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 습관을 들일수록 어쩐지 삶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마치 결말이 어떻게 끝날 지 빤히 보이는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시간과도 같았다.
어쩌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 미지의 세계에 동경을 품는다는 것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다. 가만 보니 프랑스어는 아시아어와 영어만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계 같았다. 문법도 다르고, 달랑 ‘y’ 한 글자로 온갖 것을 표현하는 듯한 문장들도 알쏭달쏭했다. 게다가 책상부터 바다까지 모든 사물을 남녀로 구분해 인식하는 삶은 또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 세계를 지독히도 알고 싶었고, 죽기 전에 그 미지의 영역으로 꼭 한번 발을 들여보고 싶었다. 어느새 나는 회화책을 사고 있었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정말인지, 호기심이 사라지면 늙기 시작한다는 말은 진짜가 아닐까? 생각난 김에 일본어라도 공부해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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